정성호 법무, 선감학원 상소 포기…김동연 지사 “환영”
경기도 역시 항소 취하…이재명 정부 들어 해결 실마리
참혹한 유해발굴 현장…역사 되새기는 추모시설 조성
“1963년 어느 날, 역 앞에서 경찰관이 멱살을 잡았어요. 12살 때였는데 강제로 차에 탑승해 경기 안산 선감도에 도착했습니다. 인솔자들이 잡히는 대로 패더군요.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 임모씨)
2020년 12월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이 열립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40년간 부랑아 수용시설로 악명을 떨친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당시 경찰이나 공무원이 아이들을 잡아 이른바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아동보호소에 넘기면 여러 경로를 거쳐 경기도가 운영하는 선감학원으로 이감됐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운영하던 이 시설은 해방 이후 1946년 ‘관치’ 경기도가 맡아 오히려 규모가 커졌습니다. 정부가 부랑아로 규정한 이들은 강제로 가족과 떨어졌고, 선감학원에선 휴일 없는 강제노역과 구타, 굶주림, 성폭력이 이어집니다.

2년 전 어렵게 인터뷰한 당시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 김영배씨는 손사래부터 쳤습니다. “힘든 얘기는 안 하고 싶다”는 뜻이었죠.
입소자들은 예외 없이 소지품을 모두 빼앗겼고, 똑같은 옷과 고무신으로 갈아신은 다음부터 이유도 모른 채 맞았습니다. 매를 맞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강제노역이었죠. 식사는 늘 턱없이 부족했다고 생존자들은 증언합니다. 반복되는 노예 같은 삶에 많은 아이가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살아서 바다를 건넌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습니다.
부랑아로 낙인 찍힌 소년들은 나이가 들어 퇴소한 이후에도 학교에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선감학원에서 얻은 장애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교육 단절로 구두닦이와 머슴 등으로 전전한 사람도 상당수였죠.
생존자들은 “세상이 내게 왜 그랬냐”, “국가가 인생을 망쳤다”고 입을 모읍니다.

◆ 서울역 앞에서 잡힌 멱살…“세상이 지옥으로 돌변”
선감학원은 국가정책에 따라 일제강점기인 1942년부터 1982년까지 부랑아 교화라는 명목으로 4700여명의 소년에게 강제노역과 구타, 가혹 행위, 암매장 등 인권을 유린한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탈출을 시도한 800여명 가운데 상당수는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올해 4월까지 경기도가 홀로 진행한 유해발굴에선 67기의 희생자 시신이 나왔습니다.
선감학원은 지금의 안산시 선감도(仙甘島)에 설립·운영됐습니다.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대부도 옆에 있는 작은 섬이었는데 지금은 시화방조제 공사로 육지로 바뀌었습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이지만, 소년들에게는 현실 속 지옥이었던 셈이죠. 개원 초기 10대 소년 수백명이 잡혀 왔는데, 이 중에는 독립군 자손도 포함됐다고 합니다.
이곳에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어렵게 말문을 연 김영배씨는 1962년 가을의 서울역을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고향인 경기 파주를 떠나 서울 남산 인근 큰누이 집에 머물던 일곱살 ‘영배’는 심부름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서울역 앞에서 경찰에 끌려갑니다. 시립아동보호소 등을 전전하다 1963년 5월 선감학원에 보내집니다. 아버지 이름과 고향 집 주소를 댔으나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5년3개월간 갇혀 지낸 그곳에선 말 그대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습니다. 배고픔과 구타의 고통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왔습니다.

학대를 이기지 못해 바닷물에 뛰어든 아이들은 대부분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시체는 야산에 암매장됐습니다. 김씨가 고깃배 선장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섬을 빠져나온 건 1968년의 일이었죠. 고향 파주를 찾아간 날, 마을 어른들은 모두 목놓아 울었습니다. 50년도 더 된 일이지만, 김씨는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밤잠을 설치며 악몽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거나,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었다”며 “주방장·웨이터·지갑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장비 자격증을 땄지만 ‘선감도 출신’인 그에게 세상은 잔혹했습니다.
강원도 탄광으로 들어간 김씨는 광부 생활을 하다가 1990년대에 중장비 사업을 하면서 비로소 가정을 꾸리고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 친목 모임처럼 만나던 11명의 선감학원 피해자들과 한데 모였습니다. 김씨는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국가나 경기도는 처음엔 답하지 않았다”면서 “억울한 아이들 수백명의 원혼을 대변하는 마음으로 과거사를 세상에 알렸고, 피해 생존자들과 유해발굴 현장을 찾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2022년 10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선감학원 사건이 ‘중대한 아동 인권침해’라고 판단했고, 2023년 1월 경기도는 지원사업과 희생자 추모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11명에서 시작한 피해 생존자도 같은 해 230여명까지 늘었습니다.
◆ “가족 있어도 끌고 가…잡히는 대로 두들겨 패더라”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로 일하던 2020년 이뤄진 설문조사에는 ‘선감학원사건 피해자신고센터’에 접수된 91명과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에서 활동한 49명 가운데 93명이 응답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응답자 평균 연령은 63.5세로 모두 남자였습니다. 당시 선감학원 수용 대상이 8∼17세의 소년이었기 때문이죠. 입소 전 거주지는 인천(33%), 서울(30%), 경기(29%)로 대다수가 수도권 출신이었습니다. 입소 당시 나이는 11∼13세(40.4%)가 가장 많았습니다.
선감학원 수감자는 ‘부랑아’로 규정됐으나, 강제로 수용되기 전 형제·자매(56%·이하 복수응답), 부모(42%), 조부모(16%) 순으로 가족과 같이 생활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거리(29%)나 보육원 등 시설(28%)에서 경찰이나 단속 공무원에 의해 선감학원으로 보내졌습니다.
일부는 옷차림이 남루하다는 이유로 부랑아로 분류돼 끌려온 경우도 있었죠. 한 응답자는 “친구들과 놀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경찰에게 붙들려 강제로 차에 탑승했다”고 증언합니다.
응답자들은 평균 4.1년, 최대 11년간 감금돼 있었습니다. 입소 생활 중 기합(93.3%), 구타(93.3%), 언어폭력(73.9%)을 겪었으며 같은 남성에 의해 성추행(48.9%)이나 강간(33.3%)을 당하기도 합니다.
응답자의 98%는 풀베기, 잡초제거, 양잠, 축사 관리, 염전노동, 농사 등에 강제로 투입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노동 시간은 일주일에 평균 6일로, 하루 9시간 안팎을 일했다고 합니다. 일주일 내내 노역에 참여한 경우도 절반이 넘었죠.
열악한 환경에서 배고픔과 폭력으로 목숨을 잃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탈출을 시도하다 숨지는 소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응답자의 96.7%는 사망자를 목격했다고 답했습니다. 직접 시신을 처리했다는 비율도 48.4%나 됐습니다.
아동기에 겪은 이 같은 인권침해는 퇴소 후 삶에도 영향을 끼쳐 응답자의 85.8%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이었습니다. 대다수가 구두닦이, 머슴, 넝마주이 등을 전전했다고 증언합니다.
생존자들의 구체적인 증언은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탈출하다 바다에서 살아남은 소년들은 인근 섬 주민에게 붙잡혀 다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13세에 끌려간 안모씨는 3년 만에 돌아온 집에서 사라진 아들 걱정에 술로 연명하다 죽은 아버지 소식을 접합니다. 오모씨는 일곱살에 붙잡혀 온 섬에서 종일 고된 노동과 구타에 시달렸습니다. 통나무를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끼워 무릎 꿇린 채 맞았다는 겁니다.
어린 나이에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은 가족과 고향을 되찾아도 상처를 곱씹으며 사회의 밑바닥을 떠돕니다. 다시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 청송교도소에 수용되기도 합니다.
◆ 응답자 96.7% “사망자 직접 봤다”…48.4% “시신 직접 처리”
숨죽여 지내던 소년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습니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선감학원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아동 인권침해’로 결론 내리며 정책을 시행한 국가와 운영 주체인 경기도가 공동으로 유족에 대한 공식사과와 유해발굴, 지원 대책 마련, 유적지 보호사업 등을 하도록 권고합니다.
경기도는 ‘잊힌 소년들’을 위해 우선 위로금 지급 규정을 명확히 했습니다. 김동연 지사 취임 직후인 2022년 10월 도 차원의 첫 공식사과와 함께 피해자에게 월 20만원의 생활비와 위로금 500만원(1회), 의료·심리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액수는 적지만 지자체 조례에 따른 지원은 피해자들을 돕고 명예를 되살리는 ‘솔로몬의 지혜’가 됐습니다. 이 상징적 조치로 경기도 역시 아동 인권유린을 저지른 지자체라는 멍에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습니다.
도는 피해자지원센터를 운영하며, 권고대로 유해발굴에도 나섭니다. 아울러 선감학원 옛터를 아동 인권침해의 기억과 치유를 위한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조치들의 상당수는 김 지사의 공식사과에서 시작됩니다. 사과문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 지원안과 함께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종합대책이 담겼습니다.

김 지사는 사과문에서 “선감학원 사건은 부랑아 갱생과 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국가가 어린이 수천 명의 인권을 유린한 비극적 사건”이라며 “국가폭력으로 큰 고통을 겪으신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지사로서 깊은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이어 “과거에 자행된 일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이 문제의 사실 규명과 피해 지원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갖고 있다”며 “약속드린 대책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피해자 보상은 물론 유해발굴은 처음부터 삐걱거립니다. 당시 정부가 이를 모두 경기도의 책임으로 돌렸기 때문이죠. 도는 정부의 일괄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청합니다. 또 정부가 주체가 된 유해발굴 사업이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선 정부 책임론을 언급합니다. 정부의 종합대책 수립을 요구하기 위해서였죠. 윤석열 정부의 대책은 진실화해위로부터 공식 권고를 받은 뒤에도 부처 간 협의 단계에 머물렀습니다.
도 관계자는 “단순한 유해발굴에 그치면 안 되고 후속조치가 필수라 정부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라며 “정부가 종합대책을 마련하면 행정지원 절차에 나서려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김동연 “국민주권 정부가 짐 함께 짊어져”…尹 정부는 외면
지루한 줄다리기는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단박에 분위기가 역전됐습니다. 5일에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 상소(항소·상고)를 포기한다고 밝혔습니다.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인권침해 사건에서 충분한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입니다. 이에 따라 경기도의 피해자 상처 치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지원사업, 특별법 제정 촉구에도 탄력이 붙었습니다.

무엇보다 경기도 홀로 짊어져 온 선감학원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지원사업에 정부가 동참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김 지사는 법무부 발표 직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주권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가 같이 짐을 짊어지는 것 같아 기쁘다”며 “정부와 함께 선감학원 피해자들의 곁을 든든히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 6월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낸 3건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와 경기도가 520만~6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국가와 경기도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물으며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이후 소송이 계속되면서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 지급이 지연됐고 안팎으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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