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담서 동맹관계 의지 표현 절실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행 약속 받아야
北·中문제는 가급적 언급 않는 게 좋아
통상협상 이제 시작… 새 생태계 구축을
‘마스가’로 한·미 제조업 보완적 관계로
주한미군 등 동맹 상황 경제문제 직결
美 설득해 주둔비 대폭 상향은 막아야
미국과의 극적인 무역 협상 타결 이후 이재명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이 임박해오고 있다. 동북아 전문 연구기관인 니어재단의 정덕구 이사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대통령이 상호 신뢰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고 봤다. 한·미 간 통상 협상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며, 미국과 새로운 경제산업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하는 때라고도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정상회담의 주요의제인 ‘동맹 현대화’에 대해 “미국의 동맹 현대화 전략은 재정 적자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전환기적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주한미군의 유연성을 확대하려는 미국 안보 당국의 고민을 이해하면서, 주한미군 주둔비를 대폭 올리는 것은 모순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통 경제 관료 출신으로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고, 김대중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과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정 이사장을 5일 서울 서초구 니어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2007년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인 니어재단을 설립한 정 이사장은 지난 20여년간의 동북아 국가 연구, 풍부한 통상 협상 경험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2025년 한국의 외교, 경제적 위기를 분석했다. 다음은 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대한 총평은.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가장 큰 관심 중 하나는 미국 조선 산업의 부흥을 통해 세계 해상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국이 이와 관련해 제시한 마스가(MASGA) 카드는 네이밍도 좋았고, 중국의 해군력 증강을 보며 속수무책이었던 미국으로서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었다. 중국의 해상권 팽창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 조선업은 최대의 기회를 얻었고, 한국 자본의 투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 만큼 트럼프와 이재명 두 대통령이 상호 이득이 되는 정치적 자산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유럽연합(EU) 등과 비교하면.
“일본, EU 등과 같은 수준인 15%에 합의했으니 나름 성공했다 본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 국가와 상황이 다르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서 특별 경제 관계란 사실이 거의 반영되지 못한 것을 넘어 사실상 한·미 FTA는 존재 의의를 상실했다. 특히 자동차, 철강 부문에서 FTA 비체약국과 같은 수준의 개별 관세를 수용한 점은 뼈아프다. 3500억달러의 투자 펀드 운용 방식, MASGA라는 용어 뒤에 도사리고 있을 함정들을 어떻게 피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상호관세가 지속가능하다고 보나.
“15% 상호관세를 모든 품목에 무차별 적용한다면 미국 시민은 그만큼 높은 물가 상승을 감내해야 하고 이것이 고금리와 고용 감소로 나타날 것이다. 내년 상반기 전에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기준 세율을 5~10% 인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높은 상호관세를 미국 경제가 견딜 수 없게 되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현재 상호관세가 지나치게 높게 설정됐다는 게 거시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를 조정한다면 2026년 하반기 초가 될 것이다. 금년 들어 미국의 실효관세율이 2.5%에서 18.3%로 대폭 상승했다. 그 여파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가격에 반영될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이 곧 열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주제가 광범위해지고 판이 커질 것이다. 통상 협상에서 큰 틀로 합의한 것의 숨겨진 세부 사항이 다뤄지고, 미국은 그 후속 조치를 구체적으로 확립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의 ‘레토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회담이기도 하다. 워싱턴 정가에는 이 대통령의 반미, 친중, 친북 이미지가 과대포장되어 있다. 한·미 동맹, 한·미·일 안보 공조 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북한 언급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정상회담을 앞둔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신뢰의 위기를 벗어나 신뢰 자산을 쌓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한·미 동맹의 확장을 위한 캠프데이비드 합의 사항을 지켜나가도록 트럼프 대통령과 공고한 합의를 함으로써다. 미국의 제조업 공동화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한국 제조업 생태계를 미국의 첨단 과학 기술과 결합해 한·미 간 보완적 산업 관계, 보완적 생존 관계를 확립할 수 있다. ‘제조 2025’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중국으로 인해 국내 제조업은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은 미국에서 제조업의 살길을 구하고, 미국도 제조업 공동화 문제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동맹의 현대화’가 주요 의제가 될 텐데.
“미국이 동맹 현대화를 추구하는 안보 전략은 재정 적자가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전환기적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미 관계의 위기가 그동안 북한이나 중국을 놓고 왔다면 현재 상황은 경제 문제와 직결돼 있다. 달러 패권이 무너지는 가운데,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통화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경제가 버티지 못할 지경에 왔다. 따라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대신 역할, 활동 범위, 성격에 있어서 유연성을 확대하려는 미국 안보 당국의 고민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만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에 따라 주둔비 부담금을 대폭 올리는 것은 상호 모순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중국은 서해에서 활동을 늘리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에다 현대화된 주한미군 평택기지, 오산·군산 비행장은 미국의 대중국 안보 전략상 ‘최근접 전진기지’가 돼버렸다. 중국은 황해를 내해화하려는 내심이 있다. 우리의 영해 개념과 경제적 수역 등을 빨리 중국과 합의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와 대만은 관계없다고 끊으려 하지만 미국은 거의 동일 선상에 두고 다루려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그렇게 가고 있다. 중국은 거기에 대응해서 서해 바다에 영향력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서해 바다 재해권을 갖지 못하면 평택항에 미국 배가 와 있으니 굉장히 아픈 것이다.”
―중국과 관계 설정은.
“한때 한국을 얕보고 무례를 일삼았던 중국은 이제 생각을 바꾸고 있다. 한국을 무시할 나라는 이제 전 세계에 없다. 중국은 우리에게 주적은 아니고 ‘가상의 적’은 될 수 있다. 언제든 미사일 방향을 돌리면 적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미국과의 전쟁이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제조업을 궤멸시킬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의 고도 기술을 빼내 가고 있다. 최대의 경계심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은 일단 미국과 신뢰 자산을 축적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트럼피즘의 여파가 상당할 것 같은데.
“협상 결과를 놓고 갑론을박할 시간도 없다. 보다 현실적인 과제들에 집중할 때다. 일본, 중국, EU 등 세계 경제 리더 국가들은 이번 트럼프와의 관세 협상 결과를 놓고 자국의 산업 경쟁 구도의 변화를 치밀하게 분석할 것이다. 특히 EU 등 경제 강국들은 고관세가 미국에 직접 투자를 촉진할 경우 국내 산업 구조의 변화를 매우 예리하게 분석하고 관세 수준이 산업별 공급체계에 가져올 변화와 대응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의 상황은 어떤가.
“미국의 고관세로 한국 제조업의 마지막 활로마저 막히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 이번 통상 협상 과정에서 가장 압박을 느낀 것이 국내 기업들이다. 지금 한국 기업은 외로운 처지가 되어 가고 있다. 반기업 정서가 과격하게 표출되는 가운데 그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면 선택은 자본의 해외 유출밖에 없다.
대외 무역환경,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이들이 모색하는 새로운 생존 방정식을 뒷받침할 방안을 함께 찾는 것이 당국의 최대 과제여야 한다. 반기업 입법 추진 등에 기업 운영을 포기하거나 해외 이전을 구상하는 사례가 잇따를 경우 제조업 생태계 침하, 국내 고용시장에 미칠 영향이 심각할 수 있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1948년 충남 당진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재무부 경제협력국장, 국제금융국장 ●재정경제원 제2차관보 ●IMF 협상 수석대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 ●중국 베이징대 초빙교수 ●제17대 국회의원 ●중국 런민대 초빙교수 ●재단법인 니어재단 이사장(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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