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작업자 66명 중 36명 참변
전체 밀폐사고 치명률比 12%P ↑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증가 추세
李대통령 “특단 조치 마련” 지시에
학계서도 ‘위험작업’ 법 규정 촉구
정부 “수급요건·기준 구체화할 것”
최근 무더위 속 맨홀에서 작업자가 질식사하는 사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맨홀 사고의 치명률이 전체 밀폐공간 사고 치명률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상 맨홀 작업의 위험성이 확인된 것인데, 하도급에 맡겨지는 작업 구조가 안전관리를 소홀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5∼2024년) 밀폐공간 재해자는 총 298명이며 이 중 126명이 사망해 치명률은 42.3%를 기록했다. 반면 맨홀 작업 중 질식재해는 66명 중 36명이 사망해 치명률이 54.5%에 달했다. 맨홀 작업이 전체 밀폐공간 재해의 22%를 차지하지만 사망자는 이보다 더 높은 2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올해만 맨홀에서 작업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6명에 이른다. 이날 금천소방서 따르면 지난달 서울 금천구에서는 상수도 누수 긴급 복구공사를 하던 70대 남성이 맨홀 아래에서 질식사했다. 당시 맨홀 내부 산소 농도는 4.5% 미만으로 안전 기준치인 18% 아래였다. 같은 달에는 인천에서도 지하시설 조사 작업을 하던 노동자 2명이 질식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6년 2명, 2017년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후 2018년부터 2022년까지는 0∼2명 수준을 유지했지만, 2023년 다시 5명으로 급증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는데도 일하다가 사망한 맨홀 작업자가 줄지 않은 것은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맨홀 사고 치명률이 높은 배경에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도급은 원청업체가 수주받은 공사를 다른 업체에 재위탁하는 방식으로,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책임 소재가 모호해져 안전관리가 소홀해지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 2명의 사상자가 나온 인천 사고에서는 계약 위반인 2단계 재하도급이 이뤄졌고, 원도급사는 사고 당일 작업이 진행되는지조차 몰랐던 것으로 조사됐다.

현행법상 밀폐공간 작업은 ‘위험 작업’에 포함되지 않아 하도급이 이뤄져도 제재가 미미하다. 위험 작업으로 지정된 도금이나 수은·납 제련 작업의 경우 하도급 시 10억원 이하 과징금이 부과되지만, 밀폐공간 작업 하도급은 계약 위반으로 인한 입찰 참가 제한 등에 그친다. 학계에서는 밀폐공간에서 유해가스 농도가 높을 때 한 번의 호흡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며, 법적으로 밀폐공간 작업을 위험 작업으로 규정해 최소한 다단계 하도급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맨홀 작업자 사망 사고가 계속되자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산재 예방 역량이 떨어지는 업체에 하도급을 금지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도 하도급 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업주에 도급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적격 수급인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적격 수급인 요건과 기준, 절차 등을 구체화해 안전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는 업체에만 하도급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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