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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가, 거래인가… ‘대도시의 결혼법’ 해부한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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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8-03 06:51:35 수정 : 2025-08-03 08:37:57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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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약속해요. 당신은 운명의 상대(love of your life)와 결혼하게 될 거에요.”

 

미국 뉴욕의 고급 결혼정보회사 ‘어도어’에서 일하는 커플 매니저 ‘루시’(다코타 존슨)는 말한다. 루시의 고객들은 수천 달러를 지불하고 ‘평생의 짝’을 찾기 위해 회사를 찾는다. 루시는 이들에게 조건에 맞는 이상형을 찾아주고 첫 데이트 이후의 반응까지 철저히 관리한다. 루시는 사랑을 연결하는 큐피드이자 고객의 자존감을 북돋우는 상담사, 높은 성사율을 자랑하는 유능한 매칭 전문가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속 한 장면. 소니 픽쳐스 제공

8일 개봉하는 셀린 송 감독의 ‘머티리얼리스트’는 현대의 사랑과 결혼이 얼마나 철저히 시장 논리 속에 놓여 있는지 들여다보는 영화다.  

 

루시의 고객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동반자에 대한 환상을 품지만, 동시에 냉정하고 까다로운 기준으로 상품을 고르듯 상대를 고른다. 체크리스트에는 연봉, 나이, 키, 몸무게, 종교, 인종은 물론 머리숱까지 빼곡하게 기록된다. 고객들은 ‘협상 불가 조건’과 ‘절대 안 되는 요소’를 명확히 강조하며 깐깐한 소비자처럼 행동한다. 

 

루시는 체크리스트의 조건과 모호한 매력을 조합해 ‘사랑’을 포장하고 세일즈한다. 사랑은 더는 감정이 아니라 만들어진 상품이며, 결혼은 마법이 아닌 쇼핑이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속 한 장면. 소니 픽쳐스 제공

이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루시도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린다. 30대 후반 나이에 무일푼으로 배우의 꿈을 좇는 루시의 옛 애인 ‘존’(크리스 에반스), 1200만 달러짜리 최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모펀드 매니저 ‘해리’(페드로 파스칼)가 그 주인공. 해리는 재력, 키, 외모, 매너까지 갖춘 ‘유니콘’ 같은 존재지만 완벽한 조건이 곧 사랑의 결정타가 되는 건 아니다. 

 

영화는 사랑이 비즈니스가 된 시대, 자신을 가공해 시장가치를 높이려는 현대인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군가는 코와 가슴에 보형물을 넣고, 누구는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키 크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포스터. 소니 픽쳐스 제공

극 중 루시는 “인류 역사상 결혼은 언제나 거래였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가축 몇 마리나 지참금이었던 것이 지금은 ‘조건’으로 변했다. 선사시대든 현대사회든, 결혼은 언제나 경제적 셈법과 ‘가성비’ 계산이 얽힌 제도였다는 것이다. ‘머티리얼리스트’는 낭만적 사랑의 이러한 민낯을 외면하지 않는다. 현대 연애의 선택과 동기, 그 결과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21세기 ‘대도시의 결혼법’을 그려낸다.

 

영화 ‘머티리얼리스트’ 촬영 현장의 셀린 송 감독(사진 왼쪽부터)과 다코타 존슨, 크리스 에반스. 소니 픽쳐스 제공 

영화는 전작 ‘패스트 라이브즈’(2023)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에 오른 셀린 송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10여년 전 6개월간 커플 매니저로 일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그는 개봉에 앞서 배급사 소니 픽쳐스를 통해 공개한 ‘디렉터스 레터’에서 “이상형에 관한 질문을 받은 의뢰인들이 하나같이 상품에 관해 이야기하듯 수치화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놀라웠다”며 집필 계기를 밝혔다. 이어 “제목 ‘머티리얼리스트’는 현대 사회에서의 사랑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초대의 의미”라고 덧붙였다.

 

영화에는 오프브로드웨이 극작가 출신인 셀린 송의 실제 희곡 ‘톰과 엘리자’(Tom & Eliza)도 등장한다. 루시와 해리가 존의 연극을 보러 가는 장면에서 이 극이 상연되며, 포스터에는 송 감독의 이름이 적혀 있다. 픽션과 현실이 교차하는 셀린 송 특유의 유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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