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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둘러싼 인간의 선택… 조력 사망을 파고든 르포

입력 : 2025-08-02 06:00:00 수정 : 2025-08-01 01:27:42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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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날/ 애니타 해닉/ 신소희 옮김/ 수오서재/ 2만원 

 

‘내가 죽는 날’은 미국 인류학자 애니타 해닉이 조력 사망의 실제 현장과 미국 내 논쟁을 깊이 있게 파고든 르포이자 인류학적 기록이다. 그는 5년에 걸쳐 오리건주 등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지역에서 말기환자와 가족,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을 직접 만나며 삶의 마지막 장면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고뇌와 선택, 연대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애니타 해닉/신소희 옮김/수오서재/2만원

책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결단이 등장한다. 90세 블루스 연주자 켄은 가족을 초대해 멋진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른 후 떠나간다. 은퇴한 간호사이자 조산사 데리애나는 오리건과 워싱턴주를 돌며 임종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한다. 파킨슨병을 앓는 활동가 브루스는 조력 사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투쟁하다 마침내 자신도 존엄사로 삶을 마무리한다.

책은 존엄사를 단순한 찬반의 구도로 다루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누구에게는 도덕적 혼란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사랑의 표현인 죽음의 순간을 저자는 복잡한 감정의 결로 포착해낸다. 법적 요건, 복잡한 의료절차, 사회적 낙인이 개인의 죽음 선택을 어떻게 가로막는지, 그럼에도 왜 많은 이가 그 길을 끝내 가려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저자는 단순히 ‘죽음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답게 존재할 권리를 강조한다. 그가 만난 가정의학과 의사 제리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제리는 방광염이 뼈로 전이돼 고통받던 환자가 산탄총으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 뒤 40년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그는 환자의 죽음 결정권을 지지하는 시민단체의 의료책임자가 됐다. 그는 “환자의 존엄성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라고 강조한다.

의료가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 존재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환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죽음을 택한 사람을 죄인처럼 보지 않고, 그 결정의 무게를 사회가 함께 감당할 수는 없는가. 첨단의료의 시대,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내가 죽는 날’은 이 묵직한 질문들에 대한 사려 깊은 탐구이자 우리가 언젠가 맞이할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보게 하는 진지한 안내서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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