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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던 무속, K콘텐츠로 부활하다 [이지영의K컬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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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31 22:45:31 수정 : 2025-07-31 22: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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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무속은 오랫동안 미신으로 낙인찍혀 왔다.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무속은 비합리와 후진성의 상징으로 치부됐고, 제도권 문화와 학문은 이를 배제하거나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무속은 한국인의 집단적 기억과 정서가 축적된 살아 있는 아카이브였다. 억압과 주변화 속에서도 공동체의 상처와 욕망, 초월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무속은 여전히 우리 삶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주변부의 문화가 이제 세계적 콘텐츠의 언어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무속을 그저 장식적 요소로 소비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무속은 케이팝 아이돌 세계와 결합해 새로운 세계관의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귀신을 퇴치하는 ‘헌터’로서의 아이돌이라는 설정은 전통적 무속의 세계관을 현대적 감각으로 치환하며, 글로벌 대중에게도 매혹적인 스토리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드라마 ‘견우와 선녀’는 전통설화와 무속신앙을 로맨스 판타지의 틀 안에서 재해석한다. 사랑과 이별, 초월적 존재와 인간의 교류라는 무속적 상상력이 동화적 감수성과 맞닿으며 오래된 이야기가 오늘의 서사로 되살아난다.

 

이 두 작품은 무속을 더 이상 숨겨야 할 과거가 아니라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동력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단순히 전통적 소재를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류사회에서 억압된 문화가 세계에서 경쟁력 있는 스토리 자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거 한국 사회가 부끄러워했던 무속은 이제 K콘텐츠를 통해 세계인이 향유하는 상상력의 원천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과제는 우리 스스로의 시선을 바꾸는 일이다. 세계는 무속을 한국적 상상력의 원천으로 바라보며 매혹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것을 낡고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과거의 그림자 속에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견우와 선녀’는 우리에게 전통이 단지 보존해야 할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새롭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의 자원임을 보여준다.

 

전통을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부심의 언어로 바라볼 때, 그 힘은 비로소 온전히 우리 것이 된다. K콘텐츠가 세계를 향해 보여준 이 가능성은 결국 우리 자신이 우리 전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전통을 다시 쓰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일이며 과거를 새롭게 불러낼 때 전통은 현재가 된다.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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