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자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자신했던 미국의 충격은 컸다. 소련이 미국에 군사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한 탓이다.

미국은 이미 ‘항공 연구를 위한 국가자문위원회(NACA)’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당시 설립된 NACA는 항공기 기술개발을 목표로 창설된 기관으로, 냉전시대 군사력 경쟁의 핵심기술인 로켓기술(우주기술)을 이끌기엔 부적절했다.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 이듬해인 1958년 7월29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사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기존 NACA의 명칭에 우주를 추가하는 한편 대통령 직속기관의 국으로 격상해 국가항공우주국(NASA)을 출범했다.
우주 탐사 임무를 시작한 NASA는 소련보다 먼저 달에 인류를 보내는 데 사력을 다했다. 제미니계획과 아폴로계획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이룩한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후 우주왕복선 시대가 열리고 국제우주정거장(ISS) 건설도 추진됐다.
큰 성공을 거뒀지만 NASA는 숱한 역경을 겪기도 했다. 1970~1980년대 베트남 전쟁 여파 속에서 예산이 삭감됐고, 1986년에는 챌린저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로 인해 활동이 위축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엔 대대적인 예산 삭감에 직면하면서 지난 22일(현지시간)에는 NASA 전현직 직원 300여명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