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릴 적 즐겨 먹던 간식, 인디언밥. 고소한 옥수수 뻥튀기 맛에 이름도 재미있었지만, 사실 이 과자는 진짜로 인디언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음식이다.
인디언, 정확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은 한때 미 대륙을 지배하던 민족이었다. 대륙 탐험에 나선 콜럼버스가 인도에 도착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인디언’이라는 명칭이 생겼고, 이후 식민지화와 서부 개척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지금도 미국 문화 깊숙이 살아 있다. 그 대표적인 선물이 바로 옥수수다.

1620년, 플리머스 식민지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극심한 환경 속에서 생존에 어려움을 겪을 때, 왐파노아그족 인디언들이 옥수수와 재배법을 전수해 주었다. 이를 계기로 추수감사절이라는 전통도 시작되었다.
옥수수는 어떤 기후나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씨앗 한 톨로 수백 톨을 수확할 만큼 생산성이 뛰어나다. 마야문명은 옥수수 덕분에 잉여 노동력을 확보했고, 인간이 옥수수로 만들어졌다는 신화까지 전해진다. 오늘날에도 옥수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작물로, 시리얼과 팝콘, 가축 사료, 바이오 연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한국에도 16세기 후반 전래되었고, ‘강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정착했다. 바로 이 옥수수를 원료로 만든 과자가 인디언밥이다.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의 농업과 생존 지혜가 깃든 상징이었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 국립인디언박물관에는 한국의 인디언밥 과자가 전시되어 있다.
이 옥수수는 미국 주류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산 여섯 줄 보리는 전분량이 부족해 술 제조에 불리했다. 그래서 전분이 풍부한 옥수수를 넣은 맥주, 이른바 부가물 라거(Adjunct Lager)가 탄생했다. 버드와이저, 밀러 등이 대표적이며, 한국의 대기업 맥주도 이 방식을 따른다. 이런 맥주는 복잡한 풍미보다는 청량감 위주의 가벼운 맛을 지닌다.
또 미국의 대표 위스키인 버번은 옥수수를 51% 이상 사용해 만든다. 이는 옥수수를 효과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으며, ‘버번’이란 이름도 독립전쟁을 도운 프랑스 부르봉왕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옥수수만을 주식으로 삼으면 니아신 결핍으로 펠라그라라는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알고 있었던 인디언들은 콩이나 감자, 육류와 함께 옥수수를 섭취함으로써 질병을 예방했다.
팝콘 또한 인디언 문화의 유산이다. 추수감사절에 인디언들이 선물한 튀긴 옥수수가 그 기원이며, 옥수수 속 수분이 열을 받아 팽창하며 팝콘이 되는 원리는 지금도 그대로다.
우리가 즐기는 맥주, 위스키, 시리얼, 팝콘, 인디언밥까지 이 모든 것엔 아메리카 인디언이 남긴 옥수수 문화의 흔적이 담겨 있다. 인디언밥은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잊히지 않는 역사이자 문화였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스피릿의 통합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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