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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힐링 프로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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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14 23:07:33 수정 : 2025-07-14 23: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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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한

이번 여름에도 살아 있는 나무들은 새 나뭇잎들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괜찮아졌다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싱그럽고 무성한 고통

 

(중략)

 

어떤 나무는 죽은 채로도 서 있다

왜 어떤 고통은 사라진 후에도 계속되는 걸까

너 없이도 우리가 이곳에서 지속되듯이

 

나는 우리에게 네 이야기를 하는 게 가능해졌다

슬퍼지기 전에 나를 이루는 것들이 나를

미리 내려놓는 계절

 

가끔 네가 묻힌 곳에 편지를 놓고 왔다

여름의 마지막 날이 갔고

무언가가 우리를 자꾸 내려놓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괜찮아졌다” 하는 문장을 읽자, 덜컥 요동하는 마음. 그래,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 이유 없이 아픈 자리가 나았으면. 그늘 아래 잠시 멈춰 쉬는 것만으로 바람에 살랑이는 푸른 잎사귀처럼 편안해졌으면. 소중한 사람을 잃고도 여전히 살아가는 내가, 우리가 이 계절의 “싱그럽고 무성한” 소요 속에 스미듯 기대었으면. 이 시를 읽는 지금, 여름을 치유의 계절이라 일러도 되려나.

 

슬픔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려면 먼저 “나를 이루는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여름의 ‘힐링’ 지침인 모양이다. 내가 나를 이루는 것들을 내려놓든, 나를 이루는 것들이 나를 내려놓든, 어떻게든 자꾸만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비워야 한다는 것. 한 사람이 묻힌 곳에 편지를 놓고 또 놓는 동안 그도 나를 놓으려나. 꼭 그런 걸 바란 건 아닌데…. 다만, 지속할 수 있기를. 이곳에서 함께. 이대로 다 괜찮은 듯이.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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