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일제 강제동원 현장인 하시마(군함도) 탄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한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유네스코에서 따지려던 우리 정부의 시도가 무산됐다. 우리 정부는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47차 회의에서 군함도를 비롯한 일본 메이지 산업유산 관련 후속조치 상황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며 관련 안건의 정식 채택을 위해 표결까지 요청했으나 부결되고 말았다. 비밀투표 결과 한·일 양국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사안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한 일본이 과반수 찬성(찬성 7·반대 3·기권 8·무효 3)을 얻었다. 이번 회의 기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유네스코 차원에서 군함도 관련 사안을 정식으로 제기하기 어려워졌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본은 2015년 7월 군함도를 세계유산에 올리면서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도 설명하겠다고 공개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이행 약속을 믿고 세계유산에 등재한 위원회가 그간 결정문만 네 차례(2015·2018·2021·2023년) 채택하면서 부실 조처를 지적해도 그때뿐이었다. 우리 정부는 이에 위원회가 직접 이행 상황 점검에 나서도록 유네스코 사상 초유의 과거사 안건 표 대결까지 제안했으나 보기 좋게 패했다. 유네스코 분담금 규모가 3배인 일본에 비해 협상력이 뒤졌다는 관측도 있으나, 지난 10년간 상대 페이스에 말려 지루하게 논의를 끌면서 피로감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제 우리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안건 부결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여기서 그칠 일이 아니다. 전략 및 정보력 부재에서 비롯된 외교 실패는 아닌지 자성하고 역량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과거사 반성은커녕 미화에 급급한 일본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큰 마당에 협상력의 한계 운운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지난 정부에서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용인했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고 군함도의 교훈을 잊었다는 손가락질이 빗발치지 않았나. 2022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탈락, 2023년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등 전략 부재가 빚은 외교 참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과거사 현안에 대해선 일본 정부를 압박해 전향적인 태도를 끌어내야 하겠지만, 미래지향적인 실질 협력을 바탕으로 한 우호 관계는 이어나가야 하겠다. 북핵 문제를 비롯한 지정학적 위기 대응을 위해선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은 일본과의 지속적인 공조는 필수불가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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