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노역 역사 알리겠단 약속 10년 동안 안 지켜
외교의 무게추 日에 실려… 한·일 관계 변수 가능성
‘일본에 속고 외교에서도 졌다.’
파리에서 7일(현지시간)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47차 회의. 한국이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군함도 등)’에 대한 후속조치 평가를 정식 의제로 올리려 했지만, 일본이 제출한 ‘의제 삭제 수정안’이 21개 위원국 비밀투표에서 찬성 7표, 반대 3표, 기권 11표로 채택되며 안건은 즉시 폐기됐다.

한국 측은 일본이 약속한 군함도에 대한 강제동원 사실 표기·추모 조치가 미흡하다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회원국 다수가 이를 정식 안건이 아닌 ‘양자 협의’로 해결해야 한다는 일본 논리에 동조한 것이다.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본을 질타했지만, 유네스코 위원국들을 움직이진 못한 셈이다.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일본에 속고, 외교적으로도 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군함도는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나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9㎞ 떨어진 가로 480m, 세로 160m 크기의 인공 섬이다. 섬 외곽 방파제와 고층 건물이 전함의 모습을 닮아 군함도로 불린다.
1887년 미쓰비시가 잠수 탄광을 채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들었고, 1959년엔 5259명이 거주했다. 1ha당 830여명이 머문 것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초 밀집 도시였다. 군함도는 1㎞ 깊이 바다 밑 갱도를 파고 고품질의 무연탄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고, 1916년엔 일본 최초의 7층 철근콘크리트 아파트를 세우며 근대 산업도시의 면모를 보였다. 섬 자체가 산업화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군함도는 2015년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철강·조선·탄광(23개)’ 가운데 하나로 등재됐다. 위원회는 “일본이 불과 50여년(1850년대∼1910년)에 서구로부터 기술을 이식·변형해 비서구 최초의 근대 공업국으로 도약한 과정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군함도의 등재는 ‘조건부’였다. 군함도는 일본에는 근대화의 상징일지 모르나 우리에겐 강제노역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섬엔 최대 3300여명이 머물렀는데, 한국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이 중 조선인 약 800명, 민간 기관의 명부 분석에 따르면 1299명이 차별과 멸시 속에 강제 노역을 했다.
영화 ‘군함도’를 보면 일본 군경이 마을에 들이닥쳐 사람들을 군함도로 끌고 가고, 많은 이들이 해저 갱도에서 노역하다 50도에 가까운 고열과 폭발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영화에서처럼 숨진 조선인 사망자는 122∼134명이다.
우리나라는 군함도의 문화유산 등재 조건으로 군함도 방문자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고, 일본도 “1940년대 다수 조선인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가혹한 조건에서 일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추모·해설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며 유네스코의 문을 통과했다.
말뿐인 약속… “조선 노동자 일했다” 표현뿐
하지만 말뿐이었다. 일본은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에 1940년대 자국 정부의 징용 정책을 설명하는 한장짜리 팸플릿을 비치했을 뿐이었고, 되레 군함도 출신 일본인의 차별은 없었다는 영상을 현지 상영했다.
이후 ‘거친 노동 환경’, ‘한국·일본 임금·복지 비교 연구’ 등을 추가 언급했지만, 피해자 증언·추모 공간 계획은 이행되지 않았다. 용어도 ‘강제’대신 ‘동원’이란 표현을 썼다.
현재 군함도 선착장 안내판과 오디오 가이드엔 “일제 말기 조선 등 출신 노동자가 일했다”는 서술만 삽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정부와 민간단체가 개선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64개 시민단체는 일본이 2020년 6월 도쿄에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 강제동원 증언이나 희생자 이름이 빠진 데 대해 ‘역사 왜곡’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노력 속에 2021년 7월 제44차 위원회는 일본의 미이행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고, ‘전체 역사 반영’과 구체적 추모 조치를 요구하는 결정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런 결의는 2015년 등재 때 이후에도 2018년 2021년, 2023년에 추가로 이뤄졌다. 유네스코는 현장 점검·보고를 계속 요구하며, 개선이 없을 경우 보호조치 강화나 등재 취소까지 논의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위원회가 강하게 나오자 일본은 표면적으론 움직이는 듯 보였다. 위원회 결정에 따라 일본은 2024년 12월1일 후속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역시 요식행위에 가까웠다. 2025년 1월31일 공개된 보고서에는 한국이 요청한 강제동원 서술·추모공간 설치 계획이 담기지 않았다.
이런 일본의 부동자세엔 위원회의 이중적인 태도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일본의 자성을 촉구하면서도 동시에 2023년부터 관련 문제에 대해 ‘정식 보고’대신 ‘업데이트’만 요구하면서 자동 심의 절차는 사라졌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위원회는 결국 일본의 계획 불이행을 한·일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축소했다. 이번 위원회의 결정으로 일본은 군함도 문제에 한층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됐다.
외교의 무게추는 한국 쪽에서 일본이 유리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2022∼2023년 일본의 유네스코 정규 분담금은 5548만 달러로 한국(1777만 달러)의 3배가 넘는다. 기여금 전체로 보면 일본은 8540만 달러, 한국은 3869만 달러다. 일본은 유네스코가 자국에 불리한 조치를 할 경우 분담금 납부를 미루며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일본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분담금을 많이 내는 국가다. (미국은 트럼프 1기 정부 때 유네스코를 탈퇴했다가 2023년 재가입했다.)
향후 우리 정부는 2027년 위원국 재선거 등을 노려 국제 여론전을 필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까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얼마나 얻을 것이냐가 중요한데, 지금으로선 어려워 보인다. 군함도 문제가 이재명 정부의 대일 외교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실은 8일 “근대 산업 시설 관련 의제가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않게 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우리 정부는 일본이 근대 산업 시설과 관련해 스스로 한 약속과 이 약속이 포함된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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