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논의” 日측 주장 손 들어줘
李정부, 한·일 관계 부담 우려도

일본이 강제동원 현장인 하시마(군함도·사진) 탄광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며 과거사 설명 등 후속조치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따지려던 정부의 시도가 무산됐다. 이를 유네스코 정식 의제로 다룰지를 놓고 초유의 투표전까지 벌인 결과 한국이 패배했다. 이재명정부의 한·일 관계에 첫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7일(현지시간) 오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47차 회의에서 한국 측 대표는 일본의 미진한 조치에 대해 올해 위원회 회의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취지로 안건을 제안했다. 하지만 일본은 사안이 위원회보다는 양자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라고 반대 입장을 보이며 해당 안건이 삭제된 회의 수정안을 제출했고, 한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표결을 요청했다. 국제무대에서 한·일이 역사 문제 사안을 두고 경쟁 투표까지 진행한 것은 처음으로 파악된다.
투표는 21개 위원국 대상의 비밀투표 방식으로 진행됐다. 투표 결과 일본의 수정안이 찬성7, 반대 3, 기권 8표로 가결됐다. 이에 따라 1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회의 기간은 물론 향후 유네스코 차원에서 군함도 관련 사안을 제기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원국들은 일본의 군함도 후속 조치를 유네스코가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한국의 주장보다는 이제는 유네스코가 아닌 한·일 간 양자 논의로 해법을 찾겠다는 일본 측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은 2015년 7월 군함도를 산업혁명유산의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며 조선인 강제동원 설명 관련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공개 약속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징용·위안부 강제성이 없었다는 등 전체 역사를 외면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일례로 2020년 개관한 정보센터는 조선인 강제노동을 전혀 다루지 않고 일본 산업화를 자랑스러워하는 내용만 담겨 역사 왜곡 지적을 받았다. 위원회가 이런 부실 조처를 지적하면 일본이 추가 조처를 하는 양상은 지난 10년간 반복됐다. 그러다 2023년 채택된 결정문에서 위원회가 일본에 ‘정식 보고서’가 아닌 ‘업데이트 보고서’를 요구하며 위원회의 자동 심의 대상에서 빠진 것이 변수로 작용했다고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의제 채택에 필요한 표가 확보되지 못해 유감스럽다”며 “이번 세계유산위 회의 기간 적절한 계기에 우리 입장을 정식으로 밝히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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