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는 발주처에 사전 보고 않고
사고당일 예정에 없던 작업 시행
실종 50대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
산소마스크 등 안전 장비 미착용
고용부, 중처법 등 위반 여부 조사
인천 계양구에서 발생한 ‘맨홀 사망사고’는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로 나타났다. 불공정한 다단계 하청 구조의 가장 아래에서 저가로 업무를 떠맡은 업체 관계자는 예정에도 없던 휴일작업 중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2명의 사상자가 나온 이번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등 관계 법령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7일 인천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49분 굴포하수종말처리장 말단에서 오·폐수관로 조사·관리업체 소속 A(52)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가 전날 이곳 맨홀 안에서 오·폐수 관로를 조사하다 실종된 지 하루 만이다. 앞서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진 B(48)씨는 호흡은 있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다.

계양소방서 관계자는 “(A씨) 발견 당시 이미 심정지로 작업복과 가슴장화를 착용하고 있었다”며 “산소마스크는 얼굴에 씌워져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를 찾아낸 곳은 최초 사고 현장에서 약 1㎞ 떨어졌으며, 병방동 맨홀 오수관로와 하수처리장이 연결되는 지점이라고 당국은 설명했다.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해당 사업장은 하청에 재하청이 버젓이 이뤄졌다. ㈜한국케이지티콘설턴트는 지난 4월 경쟁입찰로 ‘가좌사업소 차집관로 지리정보시스템(GIS)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용역’을 따냈다. 이후 원청은 ㈜제이테크와 하청을, 제이테크는 재차 LS산업과 재하청을 맺었다. B씨는 LS산업 대표이고 A씨는 일용직 근로자다.
건축공사의 경우 하도급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돼 처벌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 작업은 ‘용역’인 탓에 단순히 ‘계약 위반’ 사안이다. 공단은 원청과 계약을 체결하며 ‘하도급을 금한다’란 과업지시서를 전한 것으로 확인했다. 세부적으로 공단 측은 ‘허가 없는 하도급으로 사업의 부실이 생기면 어떠한 제재도 감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공단 관계자는 “용역업체가 작업 계획을 보고하면 승인을 내주는데 이런 사전 허가 절차도 없었다”면서 “재하도급이 이뤄진 것을 뒤늦게 알았고 앞으로 조사 과정에서 계약 취소, 부정당업체 지정 등이 가능한지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지역 대표 공기업의 허술한 감리감독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작업이 원래 없었던 것으로 공단 측은 파악했다. 맨홀 안에 들어가서 하는 위험한 공정에는 발주처에 사전 보고를 해야 하는데 전날에는 이 과정이 아예 생략됐기 때문이다. 그간 공단은 작업 계획이나 일정을 실제 인력이 투입된 LS산업 측이 아닌 원청으로부터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하청·재하청이 진행되며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영세업체가 작업을 벌이기 때문에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수사 당국은 재하청이 이뤄진 경위와 안전장비 착용 여부 등을 살펴보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경찰은 인천환경공단, 원청 및 하도급 업체를 상대로 조사를 벌여 책임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계획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중처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고용부는 질식 우려가 있는 밀폐공간을 보유한 사업장과 맨홀 등을 관리하는 곳의 안전교육과 관리·감독을 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또 근본적 산업재해 원인을 해소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 협의체도 구성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현장 안전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지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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