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800명대… 작년比 83%↑
이른 폭염에 일수마저 장기화
실외노동 안전지침 변화 필요
휴식시간 확대·그늘막·보양식…
산업계, 폭염사고 예방 안간힘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전국에 온열질환자가 급증하는 등 안전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온열질환자는 800명을 넘어서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3% 대폭 늘었다. 하지만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폭염 안전 지침은 8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변화하는 기후와 다양해진 노동 형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폭염 속 산행·농업 하다 목숨 잃어
7일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13분 전북 진안군 주천면 구봉산 일대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당국은 산 정상 부근에 쓰러져 있던 A(53)씨를 발견했다. A씨는 헬기를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당시 고막체온계로 잰 A씨 체온은 40.5도였다. 경북 영덕군에서도 팔각산에서 등산 후 하산하던 B(44)씨가 탈진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B씨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최근 고온다습한 날씨가 연일 이어지면서 농업인들이 논밭에서 일하다 잇따라 쓰러져 숨지는 사례도 빈번했다. 전북 고창군에 따르면 1일 오후 4시8분 밭일을 하던 84세 여성이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당시 고창 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33.8도를 기록했고, 지난달 27일 발효된 폭염특보는 닷새째 유지 중이었다. 지난달 29일에는 경북 봉화와 경남 진주에서도 폭염특보 속 논밭일을 하던 80대 남성과 60대 여성이 심정지로 쓰러져 숨지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밤낮없는 찜통더위에 올해 온열질환자는 벌써 800명을 넘어섰다.
이날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신고 현황에 따르면 5월15일부터 전날까지 온열질환자는 모두 87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감시 시작일인 5월20일부터 같은 기간 온열질환자가 469명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올해가 390명 많다.
특히 전날 전북 전주, 경북 영덕에서 열사병으로 추정되는 사망자가 나오면서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7명으로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3명 대비 2배 이상이다.

◆폭염 실외 노동 지침 바뀌어야
폭염 시작 시기가 빨라지거나 장기간 유지되는 기후 양상이 새롭게 나타나면서 실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지침도 변화해야 한다는 노동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과 지역 노동단체 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에 따르면 노동 당국은 2017년 12월 일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폭염안전 5대 기본 수칙을 각 사업장에 권고하고 있다. 기본 수칙은 여름철 폭염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마련됐는데, 근로자들의 휴식시간을 적절하게 보장해야 한다거나 각 사업장에 물·소금을 비치해야 한다는 포괄적인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폭염 시작 시기가 앞당겨지는 데다가 폭염 일수마저 늘어나면서 기존 기본 수칙을 새롭게 개정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폭염과 관련한 현행법이 개정된 후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탓에 기본 수칙이 현 사업장의 어려움을 반영하지 못하고, 노동 형태도 다변화해 수칙을 적용하기 어려운 사업장과 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산업계도 폭염대비 안간힘
산업계도 폭염대비에 돌입했다. 현대차 울산공장은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25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여름휴가 기간을 운영하며 공장 조업을 전면 중단한다. 이달부터 매일 빙과류 3만5000개, 복날 보양식 등도 제공하고 있다. HD현대 조선 3사(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HD현대삼호)는 이달 말 여름휴가에 들어가 현장 부담을 낮출 계획이다. 9월까지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오전 10시와 오후 3시의 휴식시간이 기존 대비 두 배인 20분으로 늘어난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고온의 열에 장시간 노출되는 작업 현장에서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그늘막 등 휴식 장소를 마련하고 온습도계·생수 등을 비치했으며 직원 개인별 자가진단표를 활용해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작업 당일 이상 징후가 있으면 사전에 파악해 작업을 제한하고 사내외 병원에서 방문 치료를 받는다.
야외 환경에 민감한 건설사들은 6∼9월을 특별 대응 기간으로 정하고 자체 근로 원칙과 체계를 마련했다.
롯데건설은 체감온도가 31도 이상이면 작업 시간을 조정하고, 33도를 넘으면 2시간마다 20분간 휴식시간을 부여한다. 한화 건설 부문은 전국 51개 현장에 푸드트럭을 운영하거나 팥빙수와 과일 스무디 등 1만명분의 간식을 제공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매주 근로자들의 혈압·혈관 건강 측정과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유통업계도 작업자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쿨 조끼 등 개인용품을 지급하고 냉방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일부 작업 공간에 유출 방지 커튼과 천장형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해 차폐식 냉방 구역을 만들었다. 대형 실링팬 등 냉방 장치도 추가로 설치해 냉방 효과를 높였다. 30도가 넘는 외부 온도에도 작업장 내 온도는 20도 수준을 유지했다고 한다. 홈플러스는 현장 근로자 2500여명에게 온열질환 예방키트를 지급한다. 키트에는 생수와 식염 포도당, 아이스팩, 이온음료 분말 등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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