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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와 한국의 두 대통령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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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7-07 16:42:35 수정 : 2025-07-07 16: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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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국빈 자격이라서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환영은 극진했다. 그는 DJ를 “인권의 개척자, 용기 있는 생존자, 세계를 위해 더 좋은 미래를 건설하려는 미국의 동반자”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DJ를 민주화 투사로 유명한 레흐 바웬사 폴란드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체코 대통령,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과 나란히 거명했다. DJ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훗날 “남편은 한·미 관계가 대등해지고 자주 외교의 새 장이 열렸다고 기뻐했다”며 “남편과 클린턴은 서로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김 대통령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제공

클린턴이 DJ와 비교한 지도자들 가운데 바웬사는 1983년, 만델라는 1993년 각각 노벨평화상을 받은 바 있다. 바웬사는 1970∼1980년대 공산주의 국가 폴란드에서 이른바 ‘자유노조’를 설립하고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을 이끈 공로가 인정됐다.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로 불린 남아공 특유의 인종차별 정책을 종식시키고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 민주공화국 창설에 기여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클린턴의 발언에 자극을 받은 것은 아니겠지만 노벨위원회는 2000년 DJ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공헌했다는 수상 이유를 밝혔다.

 

만델라는 1994년 5월부터 1999년 6월까지 약 5년간 대통령을 지냈다. DJ의 대통령 임기(1998년 1월∼2003년 1월)과 살짝 겹친다. 하지만 만델라와 DJ는 현직 시절 국가원수 자격으로 만난 적이 없다. 만델라가 퇴임하고 2년쯤 지난 2001년 3월 DJ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며 비로소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다. 당시 DJ는 전직 대통령 신분의 만델라를 거의 국빈 수준으로 예우하며 극진한 환대를 베풀었다. 2009년 DJ가 85세를 일기로 별세했을 때 아직 생존해 있던 만델라는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2015년 95세의 만델라가 타계하자 먼저 떠난 남편을 대신해 이희호 여사가 고인을 기렸다.

1995년 7월7일 한국을 국빈으로 방문한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왼쪽)이 김영삼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만델라가 한국 정치인 가운데 DJ하고만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5년 7월7일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한 만델라가 YS와 정상회담을 했다. DJ와 마찬가지로 민주화 운동을 오래한 YS 역시 평소 “나처럼 40년간 온갖 고초를 겪어 온 만델라 대통령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며 각별한 감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에 화답하듯 만델라도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김 대통령이 발휘한 불굴의 투지와 집념에서 깊은 교훈을 받았다”고 YS를 치하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만델라, DJ, YS 모두 그리울 따름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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