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의 언어로 읽어주는 문학과 삶에 관한 에세이다. ‘무진기행’ ‘소나기’ ‘이방인’ ‘폭풍의 언덕’ 등 유명 작품 속 날씨를 기상전문기자가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풀어내 흥미롭다.
책에 따르면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안개를 밤새 뿜어 놓은 입김과 같다”고 했는데, 적확한 표현이다. 안개의 본질이 공기 중에 떠 있는 미세한 물방울이기 때문이다. 이를 시작으로 박무, 해무 등 비슷하면서도 다른 안개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공통점은 모든 안개는 우리의 시야를 가려 불안을 야기하고, 심할 때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패닉에 빠뜨린다. 저자는 ‘무진기행’의 안개에 빗대 기자로 살면서 인생에 안개가 자욱했던 시절이 있었고. 불안한 안개를 자신의 삶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1942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에 관한 저자의 해석이 눈길을 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후 폭력 사건에 연루된 뫼르소는 우연히 해변에서 아랍 청년과 마주치고, 뜨거운 햇볕에 눈이 멀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총을 쏴 살인하게 된다. 그는 살해의 동기나 죄책감을 뚜렷이 설명하지 못하고 “햇빛이 너무 강해서 방아쇠를 당겼다”고 진술한다. 저자는 “이방인의 배경인 알제는 북위 36.5도에 위치해 끓어 오르는 태양과 비 오듯 불을 내리는 듯한 무더위가 일상이다. 만약에 어머니의 부고를 받은 계절이 여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차분히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일상을 보내지 않았겠냐고 생각한다”고 했다.
책에는 무진기행의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를 비롯해 ‘바람이 휘몰아치는 그 언덕 꼭대기는 된서리에 꽁꽁 얼어붙었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까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 ’ <윤동주 ‘봄’> 등 주옥같은 표현들이 그의 날씨 해설과 함께 등장한다.
위대한 작가는 날씨를 사랑했다. 날씨는 시와 소설의 배경이면서 소재이고 주인공이었다.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그날의 기분, 말투, 인간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감성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장마가 길어지면 가슴이 눅눅해지고, 가을의 맑은 하늘은 사람을 철학하게 만들며, 봄의 미세먼지는 건강뿐 아니라 일상의 의욕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그간의 취재를 바탕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하며, 우리는 더는 예전 방식으로 ‘계절’을 기억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것은 곧 인간이 환경과 맺는 관계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우리 인생은 날씨와 닮았다”는 저자는 “영원한 우기도 없고, 끝나지 않은 안개와 폭염도 존재하지 않는다, 궂은 소나기가 쏟아지다가도 거짓말처럼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날씨처럼 인생 역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날씨는 즐기는 사람의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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