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과 동시에 ‘서울 아파트값 과열’이라는 숙제를 떠안은 이재명정부가 처음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세제·공급이 아닌 ‘대출 조이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여당이 과거와 달리 세금을 통한 부동산 규제 방식을 바로 꺼내 들지 않은 것은 문재인정부 시절 세금을 통한 규제가 낳은 부작용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27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는 수도권·규제지역에서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최대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개인의 소득·집값과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대출 한도 자체를 제한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규제다. 또 이번 대책은 다주택자와 ‘갭투자’(전세 낀 매매) 수요를 제한해 실거주 목적이 아닌 주택 구매에는 금융권 대출을 사실상 막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과감한 대출 조이기로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과열 양상이 나타난 시장을 빠르게 진화하겠다는 것이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이날 열린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에서 “상환능력을 초과하는 과도한 빚을 레버리지로 삼아 주택을 구입하는 행태 등으로 주택시장의 과열과 침체가 지속 반복돼 왔다”며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 억제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또 다른 카드인 세금 규제의 경우 아직 발표 조짐이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세금으로 집값 잡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보유세나 양도세 등 부동산 관련 세 부담을 늘려 집값을 잡는 방식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유세 증세·양도세 중과 등 세금을 통한 부동산 대책은 과거 문재인정부 당시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활용됐지만, 외려 ‘똘똘한 한 채’ 쏠림을 부추기고 매물 잠김을 유발해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규제 이후 수도권 집값은 더 빠르게 상승했고, 가계 대출도 가파르게 불어난 바 있다.

공급 확대 방안보다 대출 규제 카드를 먼저 내놓은 건 과열된 서울 시장에 대한 단기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공급 대책은 정책 효과가 수년 뒤에 나타나는 만큼, 초고강도 대출 규제로 불을 끄는 데 먼저 집중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대출 수요가 쏠리는 현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28일부터 즉시 적용한다.
정부는 이번 대출 규제 카드의 효과를 지켜보면서 추가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정책 효과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해 (추가적인 후속 조치가) 당장 나오진 않을 것 같다”며 “여러 규제를 시장에 축차 투입하는 것보다는 한 번에 강력한 조치를 내놓고 그 정책 효과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접근”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책이 ‘현금 부자’에게만 좋은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고소득 무주택자와 현금 부자는 6억원까지 자유롭게 대출을 활용해 ‘똘똘한 한 채’로 빠르게 진입할 수 있고, 저소득 실수요자는 각종 제한에 동시에 막혀 발이 묶이게 된다”고 비판했다. 양 전문위원은 “정책의 즉시 시행은 이미 계약을 마치고 대출 실행을 준비하던 실수요자들에게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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