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선고 법원 겨냥 “유권자 분노 직시하길”
1심 법원의 유죄 판결로 오는 202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56)이 이른바 ‘플랜B’(대안) 카드를 꺼내들었다. 자신의 후계자나 다름없는 조르당 바르델라 국민전선(RN) 대표에게 대선 출마 준비를 요청한 것이다. 1995년 8월에 태어나 현재 29세인 바르델라는 르펜의 뒤를 이을 차세대 극우 지도자로 꼽힌다.
25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르펜은 이날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였다”며 “조르당 역시 나 대신 성화(torch)를 들어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성화를 대신 든다’라는 표현은 남이 짊어지고 있던 짐을 넘겨받는다는 뜻이다.

르펜은 “항소심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나는 무죄를 위해 싸울 것”이라면서도 “물론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라며 “살해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옳을까”라고 반문했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RN의 대선 예비 후보를 미리 확정하는 등 준비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3월 프랑스 1심 법원은 공금 횡령 혐의로 기소된 르펜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4년(전자팔찌 착용 상태로 2년간 가택 구금 실형)에 벌금 10만유로(약 1억5000만원)를 선고했다. 르펜이 2004∼2016년 유럽의회 활동을 위해 보좌진을 채용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꾸며 보조금을 받아낸 뒤 실제로는 자신의 소속 정당 RN에서 일한 당원들 급여 지급 등에 썼다는 검찰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유죄 선고와 더불어 향후 5년간 피선거권 박탈도 명령했다. 형이 확정되면 르펜은 200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르펜에 대한 항소심 판결 선고는 아무리 빨라도 2026년 여름에나 내려질 전망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르펜은 자신이 사법 리스크 때문에 대선 출마 자격을 상실하는 경우 다수의 프랑스 유권자들이 분노할 것이라며 “이(유권자의 분노)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어쩌면 선거 자체가 불법으로 무효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르펜의 출마 여부와 상관없이 2027년 대선에선 사법부 개혁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르펜에 대한 유죄 선고 직후 열린 반대 집회에서 바르델라는 “우리 RN은 모든 판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이번 판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수백만명의 애국적인 프랑스 국민에게 상처를 입히는 짓”이라고 외쳤다. 당시 일부 언론은 르펜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법관들이 RN 지지자 등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두 번 채우고 2027년 물러날 예정이다. 현재까지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프랑스 정치인은 마크롱 행정부에서 3년간 총리로 일한 에두아르 필리프(54)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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