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GDP 대비 5%로 방위비 늘려야”
동맹들, 어떻게 5% 맞출지 고심 또 고심
북대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가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32개 회원국 모두가 오직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다고 BBC 방송이 보도했다. 다름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BBC는 20일(현지시간) 오는 24, 25일 이틀 동안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의와 관련해 ‘단 한 사람만이 중요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나토 동맹국들이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5%까지 올려야 한다”는 트럼프의 요구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회의장에서 트럼프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취임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전 네덜란드 총리)은 그간 트럼프와 다른 회원국 정상들 사이에서 일종의 전령사 역할을 해왔다. 트럼프의 방위비 인상 압박에 대해 가급적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현재 나토 안팎에선 순수 군사비 3.5%에 국방과 관련된 각종 인프라 비용 1.5%를 더해 5% 조건에 맞추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순수 군사비로 GDP의 5%를 지출하는 것은 너무 부담이 큰 만큼 국방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인프라 건설 비용까지 넓은 의미의 방위 예산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유사시 군사 작전에 활용될 수 있는 다리, 도로, 철도 건설 등도 포함된다.
만약 트럼프가 이를 ‘눈속임’으로 치부하며 “나토 회원국들이 또 미국을 상대로 사기를 치려 든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회의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트럼프는 지난 5월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기념 연설에서 미군의 신임 소위들에게 “우리는 무역에서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사기를 당해왔고, 나토에도 사기를 당했다”며 “그 어떤 나라보다도 심하게 뜯겼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신은 이 발언에 대해 “국방비를 더 지출하지 않는 나토 동맹국에 대한 오랜 비판을 반복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나토는 회의가 너무 길어지면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따라 애초 2박3일이던 정상회의 일정을 이틀로 줄였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마저도 동참하지 않고 중도에 회의장을 떠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트럼프는 일정 도중인 16일 조기에 귀국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 그는 이스라엘·이란 간의 무력 충돌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긴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는 한국과도 무관치 않다. 미국은 나토 회원국은 물론 한국, 일본, 필리핀,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에도 나토와 동일한 ‘GDP 대비 5% 국방비’ 조건을 제시하고 나섰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 총액은 479억달러(약 66조원)로 GDP 대비 2.8% 수준인데, 이를 5%로 올리면 무려 120조원에 육박해 재정에 끼치는 부담이 상당하다. 이재명정부의 대미 외교가 시작과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가운데 반대 움직임도 감지된다. 영국 파이낸셜뉴스는 일본 정부가 미국의 갑작스러운 방위비 증액 요구에 반발해 7월 초로 예정돼 있던 양국의 외교·국방 장관 회의(2+2 회의)를 전격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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