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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폐지는 민주주의의 완성” 라파엘 ECPM 사무국장-김대근 연구위원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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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21 12:00:00 수정 : 2025-06-21 11: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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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30일 마지막 사형이 집행된 이후 28년째 한국의 사형제는 멈춰있다. 한국이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반대 여론과 법 개정 문제에 부딪혀 사형제 폐지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근 방한한 국제 사형제 폐지 단체 ‘사형제 폐지를 위해 하나로(ECPM)’ 사무국장 라파엘 셰뉘엘 아자는 “사형제 폐지가 민주주의 완성”이라고 강조했다.

 

14일 서울 서초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라파엘 셰뉘엘-아자 ECPM 사무국장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재문 기자

13일 서울 서초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라파엘 사무국장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김대근 연구위원이 만났다. 두 사람은 사형제를 둘러싼 세계적 여론의 방향성과 한국의 사형제 폐지 담론을 이야기했다. 프랑스에 본부를 둔 ECPM은 각국 정부와 교류하면서 사형제 실태 조사 등을 통해 사형제 폐지를 위한 국제 연대를 도모한다.

 

라파엘 사무국장은 이날 대담에서 “사형제 폐지를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며 “여론의 합의보다 높은 차원의 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사형제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핵심 가치를 논하는 것”이라며 “‘무엇이 완성형 민주주의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한국에 ‘사형제 폐지’가 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형제 폐지 단체 사무국장 라파엘 셰뉘엘-아자·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대담/2025.06.13/이재문 기자
국제 사형제 폐지 단체 사무국장 라파엘 셰뉘엘-아자·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대담/2025.06.13/이재문 기자

그는 사형제가 유지되는 한 완전한 민주주의는 없다고 주장했다. 사형제는 생명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빼앗도록 국가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라파엘은 “어떤 미치광이가 10명을 죽여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행위지만, 사형은 국가의 힘으로 누군가를 살인하는 것”이라며 “개인에겐 마약이나 술에 취했다거나 정신이 이상했다는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만, 정부가 사람을 죽이는 것엔 어떠한 변명 거리도 없다”고 강조했다.

 

여론의 완벽한 지지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해도 패러다임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논의도 제기됐다. 라파엘 사무국장과 김대근 연구위원은 “사형제 폐지는 보편 인권에 관한 것”이라고 공감했다. 라파엘은 1863년 아브라함 링컨 미국 대통령이 선언한 노예제 폐지를 예로 들었다. 그는 “200년도 되지 않은 과거에 노예제는 합법이었다”며 “누군가 ‘경제적 측면에서는 노예제가 이롭다’거나 ‘어떤 차원에선 여성의 정치 참여를 막는 게 좋다’고 하면 오늘날 ‘그렇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나”라고 지적했다.

 

국제 사형제 폐지 단체 사무국장 라파엘 셰뉘엘-아자·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대담/2025.06.13/이재문 기자

1981년 사형제가 폐지된 프랑스에서도 합의보다 정치적 결단이 먼저였다고 한다. 라파엘 사무국장은 “당시 조사에선 65∼70%가 반대 여론이었지만 폐지 이후 거꾸로 찬성이 높아졌다”며 “지금은 어느 시기에 조사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사형제 찬반이 비등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2007년 헌법 개정 통해 사형제 폐지 조항을 명료화했다.

 

사형제가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막는다는 건 환상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사람들은 쉽게 응보로 가장 적절한 게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의 법리, 외교, 정서적 여건을 비추어볼 때 환상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했다. 김씨는 “사형을 바로 집행한다는 건 비현실적인데 일부 정치인이 ‘조속한 사형 집행’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건 환상에 기댄 포퓰리즘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사형이 선고되는 건 주로 중범죄에 해당하거나 여론의 공분을 산 사건들인데, 범죄를 저지를 때 무거운 형벌이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씨는 “연쇄 살인범의 경우 꾸준히 살인을 저지르기에 애초에 사형 제도를 고려하지 않고, 홧김에 저지르는 사람들이나 이상동기 범죄자들도 형벌을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형제 폐지 단체 사무국장 라파엘 셰뉘엘-아자·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대담/2025.06.13/이재문 기자

검찰청과 통계청에 따르면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지난 10년 동안 살인 범죄는 감소했다. 2012년 인구 10만명 당 살인 범죄 건수는 2.0건이었는데, 이 숫자는 꾸준히 감소해 2022년 1.4건이었다. 무거운 처벌이 아니라 확실한 처벌에서 강력범죄에 대한 위하력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김씨는 “범죄 발생 요인은 너무 많아 형벌의 경중과 범죄율 상관관계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게 답일 것”이라면서도 “최근 연구에선 경범죄엔 무거운 처벌이, 강력 범죄에는 확실한 처벌이 효과적이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국제 사회는 실효성 없는 사형제 대신 대체 형벌 도입을 논하고 있다. 김씨는 “사형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다시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라며 “가석방 가능성 있는 수용자들이 교정 생활 잘 한다는 건 당사자들이나 교정기관 관계자들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파엘도 “가석방 있는 종신형은 범죄인들을 그냥 풀어주자는 게 아니다”라며 “범죄학자들이 말하는 건 적절한 처벌을 하되 갱생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형제 폐지 단체 사무국장 라파엘 셰뉘엘-아자·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대담/2025.06.13/이재문 기자

두 사람은 “사형제 대신 대체 형벌을 도입하면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김씨는 “여론조사에서 대체 형벌 있으면 사형제 폐지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높았다”며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2018년 국가인권위의 여론조사에서 ‘적절한 대체형벌을 도입한다면 사형을 폐지할 수 있다는 의견’에 66.9%가 동의했고, ‘국가가 사형폐지를 결정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45.5%가 ‘국가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고 응답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에 대한 3번째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헌재는 앞서 1996년과 2010년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소진영·윤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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