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짓는 7차전서 3점슛만 4개 성공
“정규 시즌 적은 출전 서러움 털어내”
조, 사상 첫 연패 후 연승으로 축포
“허, 프로답게 중요한 순간 제 몫해줘
‘통합우승’ 금지어… 팀워크 이어갈 것”
“‘아, 안 되겠구나’ 이런 생각도 솔직히 들었죠.”
2024~2025시즌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승제)에서 창원 LG를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끈 조상현(49) 감독은 정상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우승 주역 중 한 명인 허일영(40)과 함께 최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를 찾은 자리에서다. 조 감독은 “챔프전에서 3연패를 하면서 고민도, 걱정도 많았다”며 “7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후회 없이 즐겨보자’고 했는데 그게 말처럼 쉽게 됐겠느냐”고 했다.

LG는 일찌감치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서울 SK와 챔프전에서 맞붙었다. 전력상 열세였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1~3차전 내리 이겼다. LG가 손쉽게 우승할 것으로 보였다. 국내 프로농구는 물론 미국프로농구(NBA)에서도 먼저 3승을 챙긴 팀이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차전부터 흐름이 반전됐다. LG는 4~6차전 평균 51.7득점에 그치며 허무하게 3패를 당했다. SK가 사상 처음 연패 후 연승으로 역전 우승하는 ‘리버스 스윕’을 달성할 수 있는 분위기로 흘렀다. 조 감독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SK에게 일방적으로 지다 보니까 분위기 싸움에서도 밀리는 듯했다”며 “유기상(24)이나 양준석(24)처럼 젊은 선수들이 슛감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여운이 남지 않는 경기만 치르고 싶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때 LG의 최고참 허일영의 존재감이 빛났다. 허일영은 7차전에서 3점슛 4개를 포함해 14득점을 올리며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특히 경기 종료 5분36초를 남기고 10점차(55-44) 리드를 만드는 결정적인 ‘로고샷’(3점슛 라인 한참 뒤에서 던진 슛)이 압권이었다. 허일영은 “조심스럽긴 했지만 감독님께서 ‘주저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또 이런 상황에서 간을 보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평소 좋아하는 위치에서 공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던졌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조 감독이 “이런 게 바로 고참선수, 슈터, 리더의 역할”이라며 “부담이 컸을 텐데 일영이가 터트려줘서 저도 참 기뻤다”고 거들었다. MVP를 수상한 허일영은 경기 후 “늘 조연인 제가 주연이 됐다”는 인터뷰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전 드리블로 기회를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고 빈 곳을 찾아 뛰어가서 패스가 오길 기다리는 선수”라며 “공이 오지 않으면 누군가가 득점을 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조연이었고 상복도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실 허일영은 그전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경기 출전 시간(14분46초)과 평균 득점(5.0점) 모두 2009~2010시즌 데뷔 이후 가장 저조했다. 허일영은 “아직 보여줄 게 많고 욕심도 있는데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았다”며 “자주 ‘서운하다’고 했지만 감독님은 ‘다 끝나고 얘기하자’는 말씀만 하셨다”고 말했다. 허일영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속내를 터놓자 조 감독은 “일영이가 서운할 수 있다. (감독으로서) 시즌을 치르는 동안 고참선수들과 부딪쳤다는 걸 부인하지 않겠다”며 “일영이가 속상한 상황에서도 꾹 참고 양보해줘 고마울 뿐”이라고 허일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 감독은 “함지훈(41·울산현대모비스)이나 일영이처럼 고참이지만 중요한 순간 자신의 역할을 하는 이들이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선수들”이라며 “프로라면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일영은 “솔직히 40분 (내내) 뛰라고 하면 어렵지만 제 몫을 할 수 있다”며 “계약기간도 남은 데다 아직 1~2년은 거뜬히 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새 시즌 구상을 앞둔 LG를 두고 농구계에선 어린 선수와 고참 선수 간 조화가 잘 돼 한동안 강팀의 면모를 보일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조 감독은 “통합우승, 왕조, 이런 단어는 입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금지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좋은 문화를 갖고 있고 훌륭한 팀워크를 가진 선수들과 함께 강팀이 돼 늘 대권을 노려보고 싶다”며 왕조 구축에 대한 열망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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