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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식물 6028종 종자 보존… 대재앙 대비한 ‘노아의 방주’ [지방기획]

입력 : 2025-06-19 06:00:00 수정 : 2025-06-19 09: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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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백두대간 시드볼트’ 가보니

세계 2곳… 노르웨이선 경작작물 저장
98개 기관서 맡긴 28만점 냉동 창고에

철통 보안… 정전 땐 자가발전기 가동
2050년까지 세계 야생종 30% 보관 목표

경북 봉화군의 깊은 숲속에는 국가 보안시설이 있다. 아무나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다. 특히 일반인의 출입은 이중 삼중으로 엄격히 제한한다. 위치정보시스템(GPS)에 잡히지 않으며 위치 경로를 수집하는 테슬라 자동차는 출입조차 불가능하다. 이 시설은 바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있는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다.

 

시드볼트는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다시금 식물을 되살릴 수 있도록 각종 야생식물의 종자를 영구보관하는 시설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핵전쟁, 대재앙 등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때에 대비해 야생식물 자원을 보존하고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대비하고자 만든 현대판 ‘식물의 방주’인 셈이다. 2015년에 설립된 백두대간 시드볼트는 산림청 산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한수정)이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야생식물 종자를 한데 모아 영구 보존하기 위한 한수정의 노력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제3회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사진 콘테스트 입선작인 ‘시드볼트와 별’. 작은 사진은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에서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관계자가 저장된 식물 종자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국가유산청·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제공

◆전 세계 두 곳뿐… 봉화서 6028종 보관

 

18일 한수정에 따르면 식물 종자 보전을 위한 시설에는 ‘시드뱅크’와 ‘시드볼트’가 있는데 목적과 운영 방식에 뚜렷한 차이가 있다. 시드뱅크가 종자를 단기 또는 중기적으로 보전하며 현재와 미래의 활용을 위한 ‘도서관’과 같다면 시드볼트는 장기 보전이 주목적이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안전 금고’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글로벌 시드볼트는 전 세계에 단 두 곳뿐이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 있는 스발바르 글로벌 시드볼트와 봉화에 있는 시드볼트다. 두 시드볼트의 역할은 명확히 다르다. 스발바르는 경작 작물의 씨앗을 보관한다면 백두대간은 식물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야생식물의 씨앗을 영구 저장한다.

한수정 관계자는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물은 총 30만종이 넘는데 인간이 종자를 보관해 발아시켜 재생시킬 수 있는 종자는 10만종이 채 되지 않는다”면서 “나머지 70% 종자가 어떻게 발아하고 어떻게 보관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두대간 시드볼트에서 보관 중인 종자는 이달 기준 총 6028종, 28만908점이다. 종자를 기탁한 기관은 총 98개에 달한다. 국내 종자 비율은 54.5%이고 국외 종자 비율은 45.5%이다. 세계 모든 국가에서 가방 형태로 보낸 종자는 그대로 냉동 창고에 보관되고 있다.

 

시드볼트에 가장 많은 종자를 저장한 기관은 국립농업과학원이다. 이외에 기증한 기관은 종묘 회사와 수목원, 연구소, 대학 등으로 특이한 곳에는 동강할미꽃보존회와 유한킴벌리, 국가유산청, 포스코, 하동녹차연구소 등이 있다. 굳게 닫힌 시드볼트 문은 연간 분기에 맞춰 네 차례 열린다.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종자 관리를 위해서다.

시드볼트는 종자를 최적의 환경에서 보존하고자 365일 24시간 영하 20도, 습도 40%를 유지한다. 정전이 발생해도 실내 온도는 영상 10∼15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강화 콘크리트 60㎝와 3중 철판 구조를 사용했고 전원 공급은 다원화돼 있으며 전원 차단 시 자가발전기가 돌아간다. 냉동 설비는 습식 방식이며 고장 시에 대비해 여러 대의 냉각 장치를 갖췄다. 현재 종자 200만종을 보관할 수 있으며, 이 공간이 포화할 때에 대비해 2개 터널을 더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제 협력 강화… 종자 기탁 편의성↑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 분포하는 야생식물종 수의 30% 저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한수정은 시드볼트에서 종자의 발아 특성과 생리학적 특성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멸종 위기종 보전을 위한 과학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외의 다양한 야생식물 종자를 수집해 유전체학 및 단백질체학 기반 종자 생화학적 연구와 종자 장기 보존법, 시드볼트·뱅크 운영기반 구축 연구를 진행 중이다. 시드볼트에 저장하는 종자의 수집과 보존 방법은 각 계절의 변화에 맞춰 체계적인 수립 과정을 거친다. 개화기 식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결실기에 해당 장소를 방문해 종자가 충분히 성숙했는지 확인한 후 수집한다.

 

한수정은 전 세계 종자 기탁 희망자들에게 편리하고 접근성 높은 정보를 제공하고자 영문 홈페이지를 도입했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연구 활동을 통해 종자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고 해외 기관과의 글로벌 종자 보존 네트워크 확대 등에 홈페이지를 활용하고 있다.

 

시드볼트는 더 많은 야생식물 종자를 보관하고자 국제사회와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5월30일은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의 날’로 지정했는데 2050년의 ‘5’와 30%의 ‘30’을 모티브로 했다. 실제로 시드볼트의 날에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국내외에서 야생식물종자를 기탁한 국립생물자원관과 국립종자원, 공·사립수목원, 조지아 바투미식물원,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식물원, 베트남 산림과학원, 아시아산림협력기구 등 총 27개 기관이 행사에 참여했다.

 

한수정 관계자는 “시드볼트는 단순한 종자 저장시설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시설”이라며 “정례적인 행사를 열어 종자 보전의 중요성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심상택 수목원관리원 이사장 “동북아 생태축 백두대간, 종자 보전 최적지”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볼트는 야생식물 종자 보전을 위한 최적의 장소입니다.”

 

심상택(사진)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장은 전 세계 단 2곳의 글로벌 시드볼트 중 한 곳이 백두대간에 자리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심 이사장은 18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 시드볼트가 설립된 배경은 특별하다”며 “먼저 백두대간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관통하는 주요 산맥으로 동북아시아 생물다양성의 연결 통로이자 생태축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욱 눈여겨볼 점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성취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적 개발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제공하는 국가가 됐다”며 “다양한 경험과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야생식물 종자 영구 저장시설을 운영해 전 세계와 미래 세대에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시드볼트는 국가보안시설인 만큼 자연재해에도 대비책을 갖췄다. 심 이사장은 ‘지난 3월 경북 북부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로 인한 피해는 없었냐’는 질문에 “다행히 화마가 백두대간수목원까지 뻗치지 않았고 이중 삼중의 산불대응시스템이 구축돼 있어 자연재해에 충분한 대비가 가능하다”며 “내진설계로 시설을 건축해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내구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답했다.

 

시드볼트의 종자 반출은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인 조건에서 이뤄진다. 핵전쟁과 같은 대재앙이나 야생 식물종이 자연에서 완전히 사라진 경우와 생태계 복원을 위해 긴급히 필요한 상황 등을 제외하곤 시드볼트에 한 번 입고된 종자는 영구 보존된다. 따라서 백두대간 시드볼트는 운영 이래 단 한 번도 종자를 밖으로 다시 반출한 경우는 없다.

 

다만 스발바르 시드볼트에서는 최근 종자가 반출된 사례가 있다. 심 이사장은 “2015년 9월 시리아 내전으로 중동 지역의 종자은행이 파괴되고 식량 위기가 발생하자 시드볼트 설립 이후 최초로 종자가 반출됐다”며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현지 유전자원 은행이 일부 파괴되면서 손실된 자원을 대체하기 위한 반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백두대간 시드볼트는 종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국제기관 간 협력에도 머리를 맞대고 있다. 세계식물원보전연맹과 세계자연보전연맹, 유엔개발계획 서울정책센터와의 협력이 대표적인 사례다. 심 이사장은 “특히 개발도상국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아시아산림협력기구와 함께 진행 중인 종자 수집·처리·저장 관련 교육은 과학기술의 공유를 통한 국제 연대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고 자평했다. 그는 “시드볼트는 국가 간 양자협정을 확대해 다양한 식물종의 안정적 보전을 가능케 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고 공동연구는 인류의 미래 식물자원을 위한 전략적 자산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 이사장은 “시드볼트는 단순한 저장시설을 넘어서 인류의 미래와 지구 생태계를 지키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전 세계 야생식물 종자 보전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풍요로운 생물다양성을 물려주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봉화=배소영 기자 sos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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