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가게를 운영하는 전북 전주시의 A씨는 최근 잊지 못할 황당한 경험을 했다. 평소처럼 가게를 지키고 있던 지난 13일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상대는 자신을 전주교도소 직원이라 소개하며 “교도소에 문 잠금장치 2개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했다. 곧이어 A씨의 휴대전화에는 법무부 상징과 전주교도소 주소, 담당자 이름과 직함까지 기재된 공무원 명함 사진이 전송됐다.

이에 A씨는 의심 없이 차량에 잠금장치를 싣고 교도소를 찾았으나, 그곳 직원의 단호한 한마디에 말문이 막혔다. “그런 요청한 적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시간 같은 명함을 받은 다른 열쇠 업자 4명도 A씨처럼 교도소 앞에 도착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속절없이 시간과 기회를 허비한 이들은 허탈한 웃음만 남긴 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B씨는 이틀 뒤 또 다른 사칭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전주시청 노인복지과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복지사업 일환으로 문 잠금장치 200개를 설치하고 싶다”며 견적서를 요청했다. 부가세 포함 여부까지 꼼꼼히 물으며 신뢰를 쌓은 사칭범은 주문만 하고 연락을 끊었다.
한 차례도 아니고 세 차례 이상 비슷한 전화를 받은 A씨는 “경제도 어려운데 왜 자영업자를 이렇게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는 이 같은 사기가 점차 조직적이고 정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주변 열쇠 가게 5곳도 유사한 피해 전화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범인들은 업자 간 정보 공유가 적은 점을 노려 반복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피해는 공공기관을 사칭한 납품 사기로도 확산 중이다.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최근 치악산·북한산도봉·팔공산동부사무소 등에서 공단 직원을 사칭한 사기 시도가 있었다. 이 가운데 팔공산동부사무소 명의로 실제 송금 피해가 발생한 사례도 있다.

사칭범은 국립공원 사무소 직원 명함을 위조해 “울타리 설치 공사를 맡기겠다”며 접근했고, 공사와 별개로 자동제세동기(AED)가 급히 필요하다며 대납을 요구해 일부 업체가 송금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제시한 납품 장소가 실제 국립공원사무소 주소였기에 믿을 수밖에 없는 정교한 방식이었다.
공단은 전국 50여개 사무소에 피해 사례를 전파하고,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예방 교육과 대응체계 마련에 나섰다. 내장산국립공원사무소 관계자는 “국가계약법상 대부분의 구매는 전자조달시스템으로만 이뤄진다”며 “의심스러운 요청이 있을 경우 반드시 해당 기관의 공식 대표번호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직자, 연예인, 방송사 PD, 언론인 등 신뢰도가 높은 직업군을 사칭해 물품을 대신 구매하게 한 뒤 돈을 가로채는 노쇼 사기는 이미 전국적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관내에서만 123건의 노쇼 사기가 접수됐다. 그러나 직접적인 금전 피해가 없거나 ‘시간 낭비’만 발생한 사례는 대부분 신고조차 되지 않아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 관계자는 “전화 명의자와 계좌번호 추적 등을 통해 범행 실체를 파악하고 있다”며 “피해가 의심되면 즉시 경찰이나 금융감독원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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