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나일론 시작 기능성 섬유 생산
신섬유 아라미드 더한 외장 직물 같아
기업 유산 잇는 ‘헤리티지 마케팅’ 노려
햇빛 가리며 식물원 조망 확보 기능도
내부 곳곳에도 자체 생산 소재들 배치
공용 공간 많아… 협업·소통 철학 강조

건축물은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비싼 선전 매체다.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들어서 있는 연구시설들도 바이오 의료, 나노기술, 정보통신 분야의 기업들이 지향하는 바를 외관이나 공간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물론, 어떤 건축물은 너무 평범해서 기업이 어떤 가치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쉽게 알아차릴 수 없기도 하다.
마곡산업단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단연 코오롱 One&Only 타워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서울식물원(연재 21화 참고)에 면해 있다는 입지적인 요건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뚫린 독특한 입면이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특이한 입면을 통해 코오롱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걸까?
코오롱그룹의 모태는 1957년 설립된 ‘한국나이롱 주식회사’다. 기업명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생산한 기업이다. ‘KOrea’와 ‘nyLON’을 합쳐서 만든 ‘KOLON’은 기업의 이런 역사를 대변한다. 같은 맥락에서 코오롱 One&Only 타워의 독특한 입면은 기업이 양산하는 기능성 의류 조직을 상징한다. 더불어 유리 섬유 강화 폴리머(GFRP)를 사용해 만든 하얀색 차양에 코오롱이 생산하는 ‘아라미드(Aramid)’라는 소재를 추가해 인장 강도를 높였다.
설계를 맡은 톰 메인(Thom Mayne, 모포시스 대표)과 해안건축은 ‘꿈의 섬유’, ‘슈퍼 섬유’라 불리는 아라미드가 추가된 차양이 마치 직물처럼 입면에 걸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차양을 입면에 고정하는 장치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했다.

하얀색 차양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해가 질 때 서쪽에서 쏟아지는 강한 햇살을 가리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태양 고도에 맞춰 건물 안에 그늘을 드리우며, 내부에서 서울식물원을 바라보는 시야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입면에 숨겨진 또 하나의 비밀은 가운데가 꺾여 있는 형태에 있다. 이를 통해 고층부에 튀어나온 입면이 저층부에 그늘을 드리움으로써 건물을 시원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서울식물원에서 바라본 코오롱 One&Only 타워는 언뜻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실은 연구실험동, 특수실험동, 사무동으로 나뉘어 있다. 세 건물의 각기 다른 기능은 건물의 외관을 통해 드러난다. 가장 북쪽에 있는 특수실험동은 거대한 장비가 설치될 수 있도록 층고가 8~10m에 달하며,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창문이 거의 설치돼 있지 않다. 반면, 북동쪽에 배치된 연구실험동은 5.2m 높이에 햇빛을 차단할 수 있도록 수평으로 긴 띠 창이 입면을 덮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무동은 대지 남쪽을 지나는 도로에 면해 있다. 층고는 4.2m로 일반적인 업무시설처럼 유리 패널이 외벽을 채우고 있다.
세 건물은 서울식물원을 바라보는 실내 아트리움에서 연결되는데, 이곳에는 입주 계열사와 부서 간 교류를 위한 공용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실내 아트리움에 들어서면, 바깥에서 시선을 사로잡았던 독특한 입면보다 더 놀라운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바로 2~6층 사이에 배치된 ‘그랜드 스테어(Grand Stair)’다. 계단 형태의 광장으로 건축가 톰 메인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로마의 스페인 계단에서 영감을 얻어 이 공간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랜드 스테어 양쪽에는 LED조명이 내장된 마름모꼴의 패널이 부착돼 있는데, 마치 아트리움 한쪽 끝에서 무엇인가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은 역동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건축가는 높이 40m의 아트리움에서 소리가 울리는 걸 막기 위해 코오롱에서 생산하는 직물 흡음재를 마름모꼴의 패널에 부착했다.
코오롱 One&Only 타워에는 그랜드 스테어 외에도 그룹 계열사에서 생산하는 산업용 소재를 인테리어 디자인에 활용한 여러 회의실과 최상층에 배치된 직원 식당까지 다양한 공용 공간이 마련돼 있다. 모두 ‘공간이 조직의 문화를 만든다’라는 믿음을 가진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코오롱 One&Only 타워가 ‘협업을 위한 소통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공간들이다.
코오롱 One&Only 타워는 섬유산업에서 출발한 기업의 역사와 유산을 상기시키고 이 전 회장의 경영 철학을 전달하는 공간을 곳곳에 만들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높이려는 전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건물은 코오롱의 ‘헤리티지 마케팅(Heritage Marketing)’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유형의 공용 공간들이 실제 얼마나 활발하게 쓰이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건 이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구성원들 간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활동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 ‘부카(VUCA)시대’에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건물에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가변적인 공용 공간을 만든다. ‘VUCA’는 빠르게 변화하고(Volatility·변동성), 예측하기 어려우며(Uncertainty·불확실성), 여러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Complexity·복잡성),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운(Ambiguity·애매함) 현대 사회와 비즈니스 환경을 일컫는다.
우리가 공용 공간에 모여 의논하고 소통하는 건 기본적으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기 위해서다. 이때 중요한 건 각자가 가진 정보와 가치를 서로 몰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서로 모르는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협업보다는 상대방으로부터, 특히 상사로부터 ‘이제 알았다’라는 답변을 얻기 위해 공용 공간에 모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행위는 의논이라기보다는 보고에 가깝고 목적도 창의적 발상이 아닌 책임의 희석에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회의나 소통에 쓰이는 시간을 줄이고 어떤 유형의 업무든 해결하기 위해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코오롱 One&Only 타워는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를 통해 조직의 문화와 구성원의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최근 기업들의 노력이 담긴 건축물 중 하나다. 하지만 진정한 창발은 단순히 공용 공간을 늘리는 것을 넘어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채워나가는지에 달려 있다. 이제 진짜 유연하고 정말 생산적인 업무 환경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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