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산 일불사에서 49재를 지내며
아버지의 옷가지와 노잣돈과 사진까지 태웠다
그전에 죽은 아버지를 태웠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의식불명의 아버지 손을 건드렸다
나는 벌레를 보듯 눈살을 찌푸렸지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 오른 아버지 손을
나는 잡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의 끝에는
배롱나무꽃이 붉다
아버지보다 더 좋아하는 까마귀가
나 대신 슬피 울어 주겠지
까악까악 깍 까아아아아악!

크고 복잡한 일 앞에서 때로 울음은 자취를 감추곤 한다. 깊은 속 어딘가에 가득 고였을 울음은 좀처럼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증발해버린 건지, 어느 미세한 틈으로 조금씩 새어버린 건지. 그저 어리둥절하다. 갈 곳을 잃은 울음은 전신을 마구 요동하다 한순간 폭 고꾸라져 잠든 건지도. 언제 다시 깨어나 몸과 마음을 흔들어댈지 알 수 없다.
자신의 가장 깊은 속에 조심조심 울음을 재우고 사는 사람은 도처에서 울음을 보고, 또 듣겠지. 어떤 울음은 차마 형언하지 못해 “까악까악 깍 까아아아아악!”이라고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새의 울음, 그 나무의 울음이 마치 내 울음을 대신하는 것 같다 여길 것이다. 여름은 싱싱하고 향기로운 계절이라는데 벌레를 보듯, 죽은 벌레를 보듯 수시로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 입술을 잘끈 깨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런 여름이 있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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