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부산 연고 롯데와 경기서
34년간 정든 타석·팬과 작별인사
아내 시구·딸 시타… 추는 공 받아
“아내가 지금의 날 만들어” 눈물
“뒤에서 팀 도우며 인생 2막” 다짐
야구팬들 사이에는 몇 해 전부터 이어져온 ‘추강대엽’ 논쟁이 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 타자 순위를 매기는 과정에서 추신수, 강정호, 이대호, 이승엽의 이름의 한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로 많은 갑론을박이 오갔다. 이들 중 추신수 SSG 구단주 보좌역 겸 육성 총괄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그가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입지전적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태평양을 건너간 추신수는 고된 마이너리거 생활을 견딘 끝에 2005년 빅리그에 데뷔했고, 2008년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거듭났다. 2020년까지 빅리그에서 뛰면서 통산 1652경기 타율 0.275(6087타수 1671안타) 218홈런 782타점 157도루를 남겼다. 출장 경기, 안타, 홈런, 타점, 도루 기록 모두 역대 코리안 빅리거 출신 중 최고다. 20홈런-20도루 달성(2009, 2010, 2013), 사이클링 히트(2015) 등 MLB 아시아 최초 기록도 세웠다.

2020시즌 종료 뒤 MLB 구단의 영입 제의를 받았던 추신수는 2021년 KBO리그행을 택했고, 보유권을 갖고 있던 SSG에 입단했다. 그는 KBO리그에서 4시즌 동안 439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3, 396안타, 54홈런, 205타점, 51도루의 성적표를 남겼다.
2024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 프런트로 제2의 야구인생을 시작한 추신수의 은퇴식이 지난 14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렸다. SSG는 지난해 시즌 말쯤 은퇴식을 개최하려 했으나 추신수가 치열한 순위싸움 중인 팀 사정을 고려해 연기를 요청했다. 이에 SSG는 올 시즌 추신수의 고향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와의 홈경기가 열리는 날 은퇴식을 갖기로 했고, 마침 추신수 가족들도 한국에서 모일 수 있는 날인 14일 열리게 됐다.
이날 SSG와 롯데의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시구는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씨가, 시타는 딸 소희양이 했다. 추신수가 아내의 공을 받았고, 미국에서 야구 선수로 뛰고 있는 아들 무빈군과 건우군이 그라운드에서 지켜봤다.

팬 사인회를 하고 이 경기 방송 해설자로 나선 추신수는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로 내려와 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는 “아쉽다기보다 굉장히 행복하다. 야구를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랑과 응원을 받고, 박수를 받으면서 떠나는 것은 모든 선수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며 “34년 야구 인생에 정말 큰 선물을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추신수는 이어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쉽지 않다”며 “아버지가 집을 자주 비웠는데도 건강하고 멋지게 커 준 우리 아이들, 정말 고맙다. 아내는 언제나 내게 힘을 줬다. 지금의 나를 만든 아내에게 약속한다. 이제 아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내가 돕겠다”고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의 1차 지명을 받기도 했던 추신수는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관중석에 남아 박수를 보내준 롯데 팬들을 향해서도 감사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어린 시절 나는 사직구장에서 롯데를 응원하던 아이였습니다. 야구 선수 추신수의 출발점은 사직구장이에요. 롯데 유니폼을 입고 뛰지는 못했지만, 롯데 팬들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 잘 압니다. 롯데 선수들 많이 응원해 주세요.”
그는 그라운드와의 작별 의식을 마무리하면서 “이제 선수로서의 열정은 1도 남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열정이 피어나고 있다”며 “우리 랜더스 선수들을 뒤에서 돕겠다.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뛰도록 한국 야구와 SSG에 보탬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추신수 은퇴식은 SSG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김광현, 최정 등 SSG 선수들을 비롯해 1982년생 동갑내기 친구인 이대호와 오승환(삼성), 함께 MLB 무대를 누빈 류현진 등이 영상편지를 보냈다. MLB 텍사스 레인저스 동료 선수였던 아드리안 벨트레, 콜 해멀스는 한국으로 날아와 추신수의 은퇴식을 지켜봤다.
김재섭 SSG 랜더스 대표이사는 추신수의 등번호 17을 새긴 특별 트로피를 선물했고, 김재현 단장은 동판 액자를 전달했다. 이숭용 감독과 주장 김광현은 각각 유니폼 기념 액자와 기념 앨범을 건넸다. SSG 후배들은 한국 야구를 빛낸 대선배를 헹가래치며 제2의 인생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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