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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사람이 하는데…한국군에서 사람이 떠나고 있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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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6-13 09:10:58 수정 : 2025-06-13 14: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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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2년간의 군생활을 하며 전출, 교육 등으로 이사를 20번 했다. 결혼 후에도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야 해서 아이를 키우는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가 중령 진급 비선(누락)으로 다가왔을 때는 슬픔의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해군 이지스구축함 정조대왕함에서 실시된 전투배치 훈련에서 승조원이 전방을 견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 예비역 소령이 국가보훈부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에 남긴 이 말은 군의 ‘척추’인 중견간부가 직면한 환경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군은 ‘과학기술 강군’을 강조하지만, 사람이 없다면 과학기술 강군은 구호에 불과하다.

 

현대전에서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기술 비중이 커졌지만, 기술을 운용하고 판단하는 주체는 전문성을 지닌 장교·부사관 등 직업군인의 몫이다.

 

특히 숙련된 전투전문가인 대위·상사 등 중견간부는 군 조직의 중추로서 첨단 장비와 기술을 다루며, 초급간부가 본받을 만한 존재다.

 

이렇게 중요한 중견간부들이 흔들리고 있다.

 

역대 정부가 병사 급여 인상이나 초급간부 처우 개선에 집중하는 동안 군복무에 대한 회의감과 박탈감, 열악한 근무환경 등에 지친 중견간부들은 군문을 등지고 있다.

 

전역하려는 중견간부를 붙잡을 근본적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해병대 6여단과 연평부대 장병들이 적 화학탄 낙탄에 대비한 화생방 제독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책임은 크고 권한과 수입은 적다”

 

임관 이후 상당 기간 복무하던 중견간부의 이탈은 최근 수년간 두드러지는 추세다.

 

국가보훈부 제대군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장기복무(10년 이상 현역 복무) 제대군인은 2021년 3964명이었지만 2022년 4640명으로 급증했고, 2023년엔 5420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중기복무 제대군인(5년 이상 10년 미만 현역 복무)도 2021년 2821명에서 2022년 2999명으로 늘었고, 2023년엔 4061명으로 급증했다.

 

중사와 상사, 대위 등 군 조직의 핵심 계급 간부 이탈도 늘고 있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 자료에 따르면, 육군 중사·상사와 대위 장기복무자 중 희망전역자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 증가했다.

 

중사는 희망전역자가 2020년 480명, 2021년 430명, 2022년 580명, 2023년 920명, 2024년 1140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휴직자는 2020년 520명에서 2024년 1180명으로 급증했다.

 

희망전역을 신청한 상사는 2020년 290명, 2021년 230명, 2022년 310명, 2023년 480명, 지난해 810명으로 계속 늘었다. 휴직자도 2020년 970명에서 지난해 1570명으로 증가했다.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드론봇전투단 장병들이 정찰하기 위해 스위드 드론을 투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위 희망전역자는 2020년 220명, 2021년 170명, 2022년 320명, 2023년 370명, 2024년 360명으로 큰 변동은 없었다. 반면 휴직자는 2020년 280명에서 지난해 520명으로 급증했다. 

 

이같은 추세는 숫자로만 환산할 수 없는 문제를 초래한다.

 

중견간부의 이탈이 증가하면, 인력 부족에 따른 겸직 등으로 군에 잔류한 간부들의 업무량이 늘어난다.

 

갓 임관한 초급간부의 장기복무 결정 여부에도 영향을 미친다. 초급간부는 연차가 쌓이면 중견간부로 올라선다. 자신의 상사이자 선배인 중견간부가 지금 겪는 문제와 고민은 미래의 자신도 직면할 것들이다.

 

중견간부의 행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견간부들은 왜 군문을 떠나려 할까.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인력연구센터 김영곤 연구원의 ‘중견간부 이탈 증가 원인과 개선 방향’ 보고서에는 금전적 문제와 가족 문제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보고서는 임관 5년차 이상 간부 희망전역 예정자 417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하반기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담았다. 조사 결과 희망전역을 결심한 이유로 ‘업무 강도 대비 낮은 금전적 보상’이 22.54%로 1위를 차지했다.

 

‘부대관리·행정업무 위주로 복무 보람 상실’이 20.14%, ‘병사 봉급 상승 등으로 인한 박탈감’이 10.55%, ‘가족과의 별거’는 9.59%로 나타났다.

공군 폭발물처리팀이 위험물을 제거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출신별로 불합리한 대우가 있다는 인식, 진급 문제 등도 포함됐다.

 

피라미드 구조인 군 조직에서 진급은 군에서의 생존과 안정감을 보장받고,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진급에서 탈락하면 군복무에 대한 동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 예비역 장교는 국가보훈부 제대군인 취·창업 성공 수기에서 “진급 탈락할 때마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진급 발표 날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속상한 마음과 서운함으로 군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강하게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같은 문제 외에도 KIDA 조사에선 군복무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도 드러났다. 전역 예정 간부들은 ‘책임은 많고 권한은 부족하다’를 가장 많이 지목했다.

 

‘병사 급여 상승으로 인한 박탈감’과 ‘군인연금 개혁으로 수급금 감소 불안’, ‘향후 병사 처우개선이 간부보다 우선할 것’, ‘개인적 희생 요구’ 등도 지목됐다.

 

이같은 결과는 간부들이 느끼는 어려움이나 전역을 결심하는 이유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무형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상황에서 기존처럼 특정 계층에 혜택을 주거나 금전적 보상을 더 늘리는 방식으로는 군복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꿀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11일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이 전남 화순군 육군보병학교 동복유격훈련장에서 장애물극복훈련으로 암벽 하강을 한 후 물을 먹고 있다. 화순=뉴스1

◆간부들이 희망 가질 비전 필요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개 사명감 등에 이끌려 군복무를 시작한다.

 

하지만 복무를 하면서 연차가 쌓이면 기대보다는 실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군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하는 원인이며, 중도 이탈을 부추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금전적 보상 확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간부들이 복무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를 긍정하게 하는 비전과 조직문화가 필수적인 이유다.

 

그동안 군 당국과 정부는 여러 차례 국방개혁을 추진해왔다. 군 상부지휘구조를 바꾸려고 시도하거나, 첨단 과학기술을 앞세워 군사전략의 패러다임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경북 포항 공정훈련장에서 해병대 교육훈련단 공수기본 266차 교육생들이 강하훈련을 하기 위해 마린온 상륙기동헬기에 탑승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군을 실제로 떠받치는 간부들이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채 오랜 기간 복무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구절벽 시대에서 새로운 인력 모집이 쉽지 않다. 따라서 기존 인력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발전시키면서 활용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직업군인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을 장기간 복무하도록 하려면,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현대적 조직문화와 비전을 정부와 군 당국이 제시해야 한다.

 

‘제복입은 민주시민’ 개념을 중심으로  폐쇄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를 공정·공감·협력의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새 비전으로 바꿔야 한다. 또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업무 스타일을 장려하는 기풍을 조성, 군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병사를 수동적 복무의 대상이 아닌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인격체로 간주, 간부 업무의 일부를 병사에게 넘기고, 불필요한 간부 교육이나 업무, 보고서, 의전 등은 과감하게 축소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간부와 병사가 군 내부에서 자기 자신과 조직이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고, 간부의 업무량을 감소하게 하며, 사회와의 격차가 감소했다는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

해군·해병대 합동상륙훈련에서 상륙군이 하차전투를 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간부의 군복무가 가정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간부가 근무지를 자주 옮기면 자녀의 전학도 잦아지거나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기간이 늘어난다.

 

간부가 자녀로부터 “군대에서 일 안 하고 나랑 같이 살면서 다른 일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듣는다면, 부모 입장에선 군복무에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간부의 보직인사와 교류 등에서 군인 가족의 여건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직업군인은 사명감과 책임감, 공공의식이 강조되는 직종이다. 이같은 의식이 있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열악한 환경을 감수하며 오랜 기간 복무를 한다.

 

그들의 노고에 보답하고, 그들이 박탈감에 시달리지 않게 하려면, 최소한 물가상승률보다는 높은 수준의 금전적 보상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군복무를 더욱 긍정적으로 전망하는데 도움이 되는 비전과 조직문화, 근무 여건도 갖춰야 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간부들의 직업 만족도가 낮아지면서 이탈자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중견간부 이탈 방지를 위한 대책을 무엇보다 중시하지 않는다면, 한국군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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