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시계의 원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손목시계를 선물했던 게 처음이다. 현재 중고거래에서 거래되는 건 1978년 9대 대통령 취임을 기념해 제작한 시계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무궁화 문양과 친필 사인이 새겨졌고 흔들면 자동으로 동력이 생기며 날짜와 요일도 표시된다. 당시만 해도 가격이 비쌌고 제작량도 적어 이 시계는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후 대통령들도 자신의 이름과 통치 철학을 담은 문구를 담은 시계를 만들었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시계다. 한자 이름 金泳三의 친필이 앞면에 있고 뒷면에는 좌우명인 ‘대도무문’ 휘호를 새겼다. 김영삼 시계는 대량 제작됐는데 ‘하나 못 구하면 팔불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 기념 등 10여종을 제작해 뿌렸다. 이와는 달리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에는 제작 물량을 엄격히 통제해 ‘짝퉁 시계’가 등장했다. 시중에 가짜 시계들이 나돌았고 청계천 노점상이 무더기로 적발되는 일도 벌어졌다.
대통령 시계는 비매품이어서 중고시장에서 거래된다. 가격이 정치 상황이나 인기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박정희 시계는 희소성 탓에 가장 비싼데 10여년 전 55만원에서 거래되다 2017년 최순실 사태 이후 35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박근혜 시계도 취임 초기 20만원에 거래되다 탄핵정국 이후 10만원으로 반 토막 났다. 윤석열 시계는 가격이 취임 초기 20만원대까지 치솟았지만 12·3 계엄사태 이후 5∼6만원대로 폭락했다. 이명박 시계도 지지율에 따라 출렁이다 임기 말 원가를 밑돌았다. 반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라크 자이툰 파병 장병에 선물한 시계는 재임 시절 가격이 15만원 정도였는데 사후 유족 기부 명목으로 180만원에 거래가 성사되기도 했다. 대통령 시계에서도 정권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 가성비 높은 대통령 시계 제작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의미와 실용성을 담아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선물이 되게끔 하겠다”며 “기대해도 좋다”고 했다. 이재명 시계의 운명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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