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좀비기업 등은 경쟁력 상실
창조적 파괴 수반 구조개혁 불가피
고통 회피하면 日 전철 밟을 수밖에
이재명 대통령은 공언한 대로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경기부양 의지를 강력히 천명했다. 취임 첫날인 지난 4일 ‘1호 행정명령’으로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한 데 이어 당일 저녁 2시간 넘게 회의를 주재했다. 9일 2차 회의에선 “경기 회복과 소비 진작 차원에서 속도감 있게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라”고 주문했다. 지난달부터 13조8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이 집행 중인데도 여당은 6월 임시국회 내 2차 추경을 처리하겠다며 속도전을 예고했다. 이번에는 최소 21조원가량을 담을 방침이다.
시장에서도 경기 활성화 기대감이 크다. 당장 연고점을 경신하며 ‘허니문 랠리’ 중인 주식시장이 그렇다. 코스피는 11일 장중 3년5개월 만에 2900선을 돌파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올해 한국 경제성장 전망치를 기존 0.7%에서 1.1%로 높인 데 이어 바클리도 0.9%에서 1.0%로 상향 조정했다. 한국은행 전망치인 0.8%를 웃도는 수준으로 올려놨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단기간 경기 진작을 위한 적극 재정정책으로 시장의 호응을 얻은 이 대통령이 이번에는 온 국민이 함께 고통을 감내해 위기를 극복하자고 선언하길 고대한다. 비대해져 경쟁력을 잃은 경제의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려면 혹독한 구조조정 나아가 장기간에 걸친 구조개혁에 나서야 하는데,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우리 공동체가 분담하자고 호소해주길 바란다. 이렇게 체질을 바꾸지 않고서는 기초체력이 떨어진 우리 경제는 갈수록 활력을 잃어갈 것이라는 경고가 이미 국내외에서 쏟아지지 않았나.
부동산 시장이 좋은 예다.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14.2%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5%와 견줘보면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친 편이다. 2023년 우리나라 가계의 부동산 자산 비중은 64%로 역시 OECD 평균(52.9%)을 크게 웃돈다. GDP 대비 민간(개인+기업) 부채는 207.4%로 일본 버블기의 최고 수준(1994년 214.2%)에 근접했는데, 민간 빚의 절반 가까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 개인은 가격 급등 기대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에 나섰고, 업계는 2017∼2022년 저금리 시기 과잉 투자에 나섰다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기댄 채 빚으로 연명하는 산업은 건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500대 기업 중 302곳을 조사한 결과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제대로 갚지 못하는 ‘좀비’(이자보상배율 1 이하) 기업은 2021년 11%(34곳)에서 2024년 24%(73곳)로 급증했다. 이 중 20곳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이하였다. 석유화학 업종은 지난해 평균 0.64에 불과했다. 작년 기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돌아 한계상태에 빠진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541곳으로 1년 새 12.7%(61곳) 늘었다.
2023년 우리나라 자영업자(무급 가족종사자 포함 기준) 비중은 23.2%로 OECD 가운데 7번째로 높고, 평균(16.6%)도 훌쩍 웃돈다. 내수 부진에 통신판매업과 패스트푸드점의 절반 이상이 창업 후 3년 내 문을 닫았을 정도로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결국 빚으로 버텨야 하는데, 자영업자의 55%인 312만명이 모두 1064조원을 빌린 신세다.
이런 낡은 산업·경제구조에는 손대지 않은 채 2차 추경이 집행되고 금융권이 저리로 돈을 푼다면 기업 투자나 실질 경기 회복보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부작용 우려가 크다. 벌써 서울의 집값 상승세는 토지거래허가제 재지정에도 심상치 않다. 생산성이 낮은 좀비기업이나 자영업자에 강도 높은 자구책 확인도 없이 자금이 유입된다면 그만큼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마중물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창조적 파괴가 수반되는 구조개혁의 시간이 시시각각 닥쳐오고 있다. 누군가는 고통받아야 하고, 사회적 갈등도 커질 터다. 정부가 앞장서 인내하고 설득해야 시련을 덜 수 있다. 외면한다면 “이게 우리의 실력”이라 한탄하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뒤따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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