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존엄사(尊嚴死)’를 원한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는 인간이 끝까지 자신의 의미와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으로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느낄 때, 많은 이가 ‘자기결정권’에 따라 삶의 마무리를 선택하고자 한다.
유럽에서는 ‘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이 주요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일부 국가는 이를 법적으로 허용했지만 사회적·윤리적 논란은 여전하다. 존엄한 죽음의 권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재의 의미를 지키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다.

최근 프랑스 하원은 ‘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치료 불가능한 질환과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가 명확한 의사를 밝히면, 의료진이 약물을 사용해 최후를 도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서유럽을 중심으로 의사 조력자살을 법제화하는 국가는 점차 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사 조력자살’의 입법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2021년 만 19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 76.3%가 안락사 또는 ‘의사 조력자살’의 입법화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찬성 이유로는 남은 삶의 무의미(30.8%),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26.0%), 고통 경감(20.6%), 가족의 부담 완화(14.8%), 사회적 비용 절감(4.6%), 인권 침해가 아니라는 점(3.1%) 등이 제시됐다. 반면 반대 이유로는 생명존중(44.4%), 자기결정권 침해(15.6%), 제도 악용 및 남용 우려(13.1%) 등이 있었다(국제학술지 ‘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이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며, 그 근간에는 ‘자기운명결정권’이 내포되어 있다.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자신의 생명과 신체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포함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적극적인 ‘의사 조력자살’을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치병이나 말기 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고통을 덜어주며, 가족의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줄이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조력자살의 입법화 논의는 앞으로도 사회적 공론장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조력자살은 유교적 생명존중, 가족 중심의 도덕 그리고 기독교·불교 등 종교적 생명관과 깊이 충돌한다. 생명을 스스로 단절하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불효로 여겨졌고, 종교적으로도 금기시됐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생명 경시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압력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는 ‘자기운명결정권’이 포함된다는 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환자가 치료 불가능한 질환을 앓고 있고, 병의 진행이 불가역적(不可逆的)이며, 참을 수 없는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지 신중히 확인한 뒤 조력자살을 인정해야 한다. 국회는 무의미한 생명 연장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력자살의 법제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복진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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