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도 백골! 죽어도 백골! 필사즉생(必死卽生), 골육지정(骨育之情) 백골! 백골! 파이팅!”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육군 백골부대 장병과 군무원들이 외치는 구호다. 죽음을 각오하면 반드시 산다는 뜻의 ‘필사즉생’이 들어간 이유는 알겠는데, 가까운 혈족 사이의 의로운 정을 의미하는 골육지정은 왜 포함됐을까. 피를 나눈 가족이나 친척을 상대로 느끼는 감정 못지않게 뜨거운 전우애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백골부대는 경례 구호도 ‘백골’이다. 부대 앞에는 커다란 백골 그림이 내걸려 있는데, 이를 처음 본 이들은 ‘무시무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백골부대의 정식 명칭은 제3보병사단이다. 아직 육군이 없던 1947년 조선경비대 3여단으로 처음 창설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따른 정식 육군 창설 이후인 1949년 사단으로 승격했다. 초창기 이 부대에는 38선 이북에서 살다가 월남한 이가 많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골이 부대 상징이 된 것도 장병들이 ‘죽어 백골이 되어서라도 북녘 땅을 되찾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철모에 백골을 그려 넣은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국군 부대 가운데 가장 먼저 38선을 넘어 북진한 것도, 한반도 최북단에 해당하는 압록강 혜산진까지 진격한 것도 모두 3사단이 세운 전공이다.
휴전 협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2일 강원 양구 북방 748고지(일명 ‘피의 고지’) 일대에서 국군과 중공군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김왕호 대위가 이끄는 3사단 22연대 1대대 3중대가 고지 탈환의 선봉에 섰다. 중대장인 김 대위는 중대원들을 향해 “우리는 기습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선제 포격 없이 진짜 기습을 가한다”고 지시했다. 후방 포병부대의 화력 지원을 기대하지 말고 적과 백병전을 치른다는 각오로 교전에 임한 것이다. 결국 국군은 748고지 점령에 성공했고 그 공로로 김 대위는 1952년 10월 화랑무공훈장, 1953년 1월 충무무공훈장을 차례로 받았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6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김왕호(1929~1953) 소령을 기리는 현양 행사가 열렸다. 748고지 탈환에 큰 공을 세운 그가 휴전을 불과 1개월 앞둔 1953년 6월22일 강원 김화지구 전투 도중 전사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고인의 업적을 고려해 대위에서 소령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고인이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월남한 점을 감안해선지 현양 행사에 평남지사인 정경조 이북5도위원장도 함께했다. 호탕하고 쾌활한 성격과 단단한 체구로 ‘왕호’(왕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고인의 호국 정신이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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