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결정에 판사들도 해석 분분
대법, 각자 재판부 판단할 몫 입장
민주, 형소·선거법 개정안 처리 땐
李 대통령 사법리스크 사실상 해소
전국법관대표회의 30일 임시회의
‘사법부 독립’ 논란 관련 안건 다뤄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가 9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재판을 무기한 연기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가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을 규정한 헌법 84조를 근거로 들었는데,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아닌 하급심에서 판단할 사안인지를 놓고 이견이 팽팽하다. ‘소추’의 범위를 기소뿐 아니라 재판까지 확대하는 것에 대한 판례나 헌재 결정이 없는 탓이다. 이번 결정은 이 대통령 사건을 심리 중인 다른 재판부에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기일변경 사유로 밝힌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법조계에서는 ‘형사상의 소추’의 범위가 새로운 범죄의 기소에 해당하는지, 기존에 진행되던 재판까지 포함되는지를 두고 해석이 갈려왔다. 해당 법 조항이 적용된 선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헌법 84조 해석 논란에 종지부?
법조계에서는 서울고법이 기일을 추후지정하면서 사유를 헌법 84조라고 밝힌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으로서는 재판을 진행하고, 이 대통령이 권한쟁의를 청구해 헌재 판단이 나오거나 형사소송법이 개정된다면 그에 따라서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전원 교수는 “헌법 84조를 근거로 한다면 추후지정이 아니라 대통령 임기 동안 진행 못 한다고 해야 했다”며 “불명확한 해석이 됐다. 일각에서는 국회 계류 중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기다린다는 시각도 나온다”고 했다.
이번 결정으로 이 대통령의 다른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들이 서울고법 형사7부의 결정을 따를지도 주목된다. 대법원은 앞서 국회 질답을 통해 원칙적으로 헌법 84조 해석을 비롯한 재판 진행 여부는 재판부가 판단할 몫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수도권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법리 해석뿐 아니라 여러 사정을 고려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고법에서 이러한 결정이 나왔으니 다른 재판부도 따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통령이 됐을 때는 재판도 못하는 것으로 해석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보인다”면서 “다른 재판부에서는 얼마든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李대통령, 6일 만에 사법리스크 해소
서울고법 형사7부의 결정으로 이 대통령 재임기간 중 사법리스크는 사실상 해소될 전망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1심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무죄로 뒤집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는 등 쟁점이 첨예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형사소송법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 대통령의 나머지 4개 재판도 재판 진행이 어려워진다. 민주당은 대통령에 당선된 피고인에 대해서 형사재판 절차를 정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구성 요건에서 ‘행위’를 삭제하는 법안을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처리되면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면소’ 판결받을 수 있다.
서울고법 형사7부의 기일 변경 결정에 대해서도 검찰이 항고해 대법원 판단을 구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항고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전원 교수는 “항고할 수는 있지만 기소는 불가능하고 재판은 진행돼야 한다는 해석을 명확히 하기가 어렵다”며 “또 만약 항고해서 대법원이 판단한다면, 대법원의 결정은 넓은 의미의 재판이기 때문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대법원 판결로 촉발된 ‘사법부 독립’ 논란 관련 안건을 다루는 임시회의를 30일 오전 10시 속행한다고 밝혔다. 논의 대상은 지난달 26일 임시회의에서 상정된 안건과 그밖에 현장에서 발의되는 안건이다. 지난 회의에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입장 채택이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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