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대통령 경호를 전담하는 정부 기관이 처음 생겨난 것은 박정희정부 출범 직후인 1963년 12월의 일이다. 창립 이후 40년이 훨씬 넘는 기간 동안 ‘대통령경호실’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박정희정부 이전에는 경찰이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았다. 이승만정부 시절에는 경무대경찰관파견대가, 1960년 4·19 의거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경무대 명칭을 청와대로 바꾸면서부터는 청와대경찰관파견대가 각각 대통령 경호를 전담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다 보니 역대 정부에서 경호실장의 위세는 참으로 대단했다. 박정희정부의 박종규(1964∼1974년 재임)와 차지철(1974∼1979년 재임), 전두환정부의 장세동(1981∼1985년 재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차지철은 10·26 사건 당시 박 대통령과 함께 있다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장세동의 경우 경호실장을 마치고 안기부장으로 영전하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민주화 이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경호실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까지 장관급 대우를 받던 경호실장을 차관급으로 낮추면서 이름도 경호처로 바꿔 버렸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작지만 강한 정부’를 이유로 들었다. 청와대 근무자들의 직급이 너무 높으면 내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경호처장은 이후 박근혜정부 시절 다시 장관급으로 격상되기도 했으나, 2017년 문재인정부 출범과 동시에 차관급으로 환원돼 오늘에 이른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닷새 만인 9일 경호처 본부장급 간부 5명 전원에게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졌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해야 할 국가 기관이 사실상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병으로 전락해 많은 국민의 공분을 샀다”고 지적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혐의로 법원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해 발부한 체포영장 등의 집행을 경호처가 가로막고 방해한 데 따른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새 정부 출범 후 여러 기관들 가운데 경호처가 가장 먼저 수술대 위에 오른 모양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