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60대, 딸과 투표소 방문
복지카드 냈지만 가족 동반 거부
되레 직원이 후보 기표위치 안내
‘투표 보조 가능’ 공직선거법 위반
“선관위 현장교육 근본 문제” 지적
선관위, 사전투표 관련 35건 고발
시각장애 1급 유권자가 대선 투표에서 가족 동반을 거부당하고 투표사무원 안내로 기표한 일이 뒤늦게 확인됐다. 공직선거법은 시각장애인의 가족 동반 투표를 명시하고 있지만 투표사무원이 관련 법령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장애인의 정당한 투표권이 침해된 것이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유사 사건들로 볼 때 선관위의 현장교육과 관리체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4일 중랑구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김모(68)씨는 대선 투표일인 전날 딸과 함께 서울 중랑구의 한 투표소를 방문했다. 시각장애 1급인 김씨는 복지카드를 지참하고 가족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려 했지만 투표사무원이 이를 제지했다. 대신 투표사무원이 김씨와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 “1번은 여기, 2번은 여기”라며 후보자별 기표 위치를 안내했다. 김씨는 당황해 딸을 찾았지만 딸의 기표소 출입은 허용되지 않았다. 결국 투표사무원에게 투표 의사를 밝힌 뒤 손끝 안내를 받아 기표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투표사무원은 선거일에만 투표 사무를 담당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확인됐다.

중랑구 선관위는 해당 투표사무원이 ‘김씨가 시각장애인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신분확인을 하는 사무원과 안내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역할 분담으로 인한 소통 부재가 있었다”고 해명하고, “시각장애인 유권자 안내 관련해서는 교육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씨 가족은 “어머니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투표사무원이 손끝으로 안내해야 했는데 시각장애인인 걸 몰랐을 리 없다”고 반박했다.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은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하여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 또는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하여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김씨가 가족도 아닌 투표사무원에게 투표 의사를 공개해야 했던 것은 비밀투표 원칙에도 위배된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의 김재왕 변호사는 “명백한 선관위 잘못”이라며 “선관위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제지한 것으로 보이며,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법과 다르게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선거 때마다 유사 사건이 반복돼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사전투표에선 양평에서 시각장애인이 활동지원사와 투표하려다 거부당했는데, 선관위는 “가족이 아니면 2명을 동반해야 한다”며 절차상 문제없다고 주장했지만 당사자는 “사전 고지가 없었다”고 반발했다.
1급 시각장애인인 양남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이사는 “중도 시각장애인, 더더구나 1급 같은 경우는 진짜 보조를 받지 않으면 투표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선거 관리 부실 잡음은 이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따르면 전날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 실내 배드민턴장 개표소에서 2022년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가 나왔다. 투표용지를 수개표하는 과정에서 서울특별시의회의원선거투표 강서구 제4선거구 용지가 발견됐다. 투표지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용연 후보에게 기표돼 있었다.
선관위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일까지 총 35건의 선거법 위반 사항을 경찰에 고발, 수사의뢰 등 조치했다고 밝혔다. 선관위 ‘사전투표 관련 조치 현황’에 따르면 사전투표 관련 선거방해 혐의 고발은 15건, 수사 의뢰는 1건이다. 사전투표 기간 이중 투표 시도 적발도 1건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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