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정지버튼 눌러줄 사람 없어
현장서 비명·도움요청도 못 들어
경찰, 구체적인 사고 경위 조사
“김용균 죽음 반복… 진상 규명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 김충현(50)씨가 혼자 작업하다가 선반 기계에 끼어 숨진 가운데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3일 충남 태안경찰서에 따르면 김충현씨는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의 원청업체 한전KPS의 하청업체인 한국파워O&M 소속이다. 경찰은 전날 김씨 소속 업체 대표이자 현장소장인 A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사고 당일 작업 현황과 작업물 개요, 원청 측의 작업지시 여부, 근무 형태 등 근무 전반에 관해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확보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김씨는 사고 당시 1층에서 혼자 작업하고 있었고 A씨는 2층에 있었다. 김씨는 2일 오후 2시40분쯤 절삭 기계를 작동시키는 과정에서 옷이 회전체에 말려 들어가 작업물에 맞아 사고를 당했다. 기계에는 위험발생 시 전원을 강제로 차단하는 비상정지 버튼이 있었지만 김씨는 버튼을 눌러 줄 동료 한 명 없이 혼자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에 따르면 사고 최초 발견자인 A씨는 김씨의 비명이나 도움 요청이 아니라 “끼이익”거리며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음을 듣고 현장을 확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 몸이 빨려들어가면서 기계가 정상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김씨가 만들려던 공작물 도안이 그려진 스케치와 실제 공작물, 개인 장비 등을 수거해 분석 중이다. 설비와 작업일지, 작업자 배치 등도 면밀하게 살필 방침이다. 경찰은 “사고 당시에는 작업 지시가 없어 같이 있지 않았다”는 A씨 진술 등을 토대로 구체적인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한국파워O&M의 원청인 한전KPS가 전날 자체작성해 보고한 ‘태안사업처 사고 보고’ 문서를 공개했다. 한전KPS 측은 해당 문건에서 사고 원인에 대해 ‘발전 설비와 관련 없는 공작기계에서 사고 발생’으로, 향후 전망 및 대책에 대해서는 ‘파급 피해·영향 없음’이라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전KPS는 전날 배포한 ‘태안사고 관련 설명자료’에서도 ‘(김씨가 했던 작업이) 금일 작업오더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항’이라고 기재했다.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3일 한국서부발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서부발전에서 김용균이 또 죽었다”며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외쳤던 ‘일하다 죽지 않고 싶다’, ‘안전인력 충원하라’, ‘2인1조 근무 보장하라’ 등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은 채 혹시나 노동자의 목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회사는 ‘노동자가 임의로 일하다 죽었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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