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브’
장기이식 6명 초능력
악한 1명 독점하려해
선량한 5명 뭉쳐 싸워
극장가 1위 출발 순조
‘소주전쟁’
IMF 진로그룹 모티브
인수합병 과정 통해
자본의 계략 보여줘
개봉 나흘 15만 그쳐
“정체성이 ‘오락’인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하이파이브’ 감독 강형철) “보고 나면 숙취처럼 뭔가 남는, 곱씹게 되는 영화가 될 것이다”(‘소주전쟁’ 주연 유해진)
같은 날(지난달 30일) 개봉한 두 편의 한국영화 ‘하이파이브’와 ‘소주전쟁’은 만든 이의 일성만큼이나 상반된 매력을 선보인다. ‘하이파이브’가 현실에서 30㎝쯤 붕 뜬 상태로 발랄한 아이디어와 재미, 배우들의 앙상블로 승부를 보는 슈퍼히어로 영화라면 ‘소주전쟁’은 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 주류 생산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을 모티브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사람들의 얼얼함을 그린 영화다. 두 영화는 각각 2021년, 2023년 크랭크업 후 오랜 기다림 끝에 극장에서 관객과 만났다.

◆이웃집 슈퍼히어로 ‘하이파이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한국 극장가를 장악한 ‘마블 천하’ 10년, 국내 많은 창작자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를 상상했다. 공중부양·초감각 등 초능력을 지닌 부모·자식 세대 삶을 굴곡진 한국 현대사 맥락 안에 녹여낸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무빙’, 소시민 주인공이 갑자기 생긴 초능력을 바탕으로 철거촌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영화 ‘염력’(연상호, 2018) 등이 그간 대중을 열광시키기도, 대중에게 외면당하기도 했다.
영화 ‘과속스캔들’(2008)과 ‘써니’(2011)의 흥행 감독 강형철이 ‘스윙키즈’(2018)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영화 ‘하이파이브’는 한 명의 공여자에게서 심장·간·신장·폐·각막·췌장을 각각 이식받은 6명에게 별안간 초능력이 생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중 5명은 선량하나 1명은 사악하다. 5명의 능력을 흡수해 독점하려는 악당 사이비 교주 ‘영춘’(신구·췌장 이식)에 맞서 선량한 5명은 똘똘 뭉친다. 이들은 서로 믿고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원팀 ‘하이파이브’로 거듭난다.
괴력과 스피드를 얻게 된 태권소녀 ‘완서’(이재인·심장), 입김으로 돌풍을 일으키는 ‘지성’(안재홍·폐), 전자파를 눈으로 보며 전자기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기동’(유아인·각막), 치유 능력을 지닌 ‘약선’(김희원·간), 자신의 초능력을 뒤늦게 깨닫는 요구르트 판매원 ‘선녀’(라미란·신장)까지. 초인간적 신체 능력을 갖추게 됐음에도 하이파이브는 영웅으로 보이기는커녕 어딘가 변변치 않고 보잘것없다. 능력을 이용해 부와 명예를 거머쥘 궁리를 하거나 세상을 바꿀 큰 꿈을 도모하기엔 담이 작은 소시민들이라서다.

타인의 스마트폰을 비롯해 모든 전자기기를 해킹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동이 벌이는 비행은 기껏해야 동네 성인오락실 기기를 조작해 잭폿을 터트리는 일. 골목길 폐지 줍는 할머니의 수레를 입김으로 밀어드리는 지성이나 횡단보도 보행 신호 시간을 늘려 시각장애인이 신호등을 무사히 건너도록 돕는 기동의 모습을 보자면, 이들을 ‘이웃집 슈퍼히어로’로 부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현실밀착형 히어로들의 이야기여서 화려한 특수효과로 무장한 할리우드 히어로물에선 절대 볼 수 없을 ‘야쿠르트 카트 체이싱’같이 실소가 터지는 장면도 등장한다.
요컨대, 하이파이브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일을 하는’ 광경에 오롯이 집중하는 만화 같은 영화다. 어떤 창작자는 슈퍼히어로물을 만들 때 시스템이 무너진 세상을 끌어들이거나 히어로가 세계에 정말 존재한다면 발생할 일을 핍진하게 보여준다. 또 누구는 히어로가 발휘하는 힘의 정당성 문제에 천착하겠으나 강 감독은 하이파이브 5명이 사는 작고 좁은 세상을 넘어선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그의 야심은 올드팝 선율과 유머로 버무린 영화를 보고 관객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극장을 나서게 하겠다는 데 있다.

강 감독의 무기는 ‘배우 어벤저스’ 군단이다. 33세 나이 차이인 김희원과 이재인을 포함해 ‘과연 어울릴까’ 싶은 배우 다섯이 팀을 이루는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굉장하다. 14살 때 영화 ‘사바하’ 주연을 맡은 이래 늘 충무로의 ‘믿을 구석’이었던 이재인은 영화의 실질적 주인공을 맡아 무비스타 면모를 확실히 뽐냈고, 안재홍이 선사하는 재치와 코미디의 감각은 그를 더욱 주목하게 한다.
다만 속편과 프리퀄(전작의 앞선 이야기) 제작을 염두에 두고 하이파이브가 구성된 내력을 보여주는 기원에 해당하는 영화여서인지 서사 곳곳에 의도적인 구멍이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런 와중에 2023년 유아인의 마약 스캔들이 불거졌고, 촬영 시기(2021년)의 바람과 달리 코로나19 사태 이후 극장가가 반등하는 대신 쇠퇴하고 있다. 앞으로 ‘하이파이브’ 세계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강 감독은 “(장기) 기증자는 누구이며 (하이파이브가 장기 이식 이후 지니게 된) 문신이 고대에 기원해 어떻게 한반도로 건너왔는지 등 생각해둔 이야기는 많다”며 “미래 일은 미래에 맡기고 지금은 극장 상영에만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씁쓸한 뒷맛, 소주 당기게 하는 ‘소주전쟁’
‘소주전쟁’은 1997년 말 외환위기로 파산 직전에 놓인 ‘국민 소주’ 기업 국보를 집어삼키는 자본의 계략을 보여주는 영화다. 회장 석진우(손현주)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 탓에 경영 위기를 맞은 국보그룹. 화의신청이 수용돼 석 회장의 경영권을 지키고 5년 후 원금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생명을 연장하지만, 뉴욕 기반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먹잇감이 된다. 영화는 회사를 지키려는 국보그룹 재무이사 종록(유해진)과 솔퀸 직원 인범(이제훈)이 이끌어간다. 실제 IMF 시기 진로그룹 인수전을 모티브로 극화했다.

인범에게 국보그룹 합병은 막대한 보너스를 받기 위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범은 간계를 숨긴 채 국보그룹 구조조정 컨설팅을 맡아 종록과 한 팀처럼 일한다. 하지만 뒤에서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국보소주 채권을 사 모으며 국보의 숨통을 끊을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나간다. 그러는 사이 종록과 인범은 어느새 매일 밤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될 만큼 친분이 깊어진다. 둘은 직장생활에 대해 상반된 가치관을 지닌 유형을 상징하기도 한다. 종록에게 회사는 인생의 전부다. 그는 일과 삶을 굳이 나누어 생각하지도 않는다. 회사의 안녕이 곧 자신의 안녕이기에, 석 회장이 숨 쉬듯 벌이는 오너리스크와 그가 가하는 모욕에도 굴하지 않고 회장에게 충성을 다하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갈아 넣는다. 반면 인범에게 회사는 성과를 입증해 돈 버는 곳에 불과하다.

영화엔 최소 세 명의 빌런이 등장한다. 소시오패스로 의심되는 평면적 악인 석 회장, 솔퀸 홍콩 본부장 고든(바이런 만), 영달을 위해 법조인 윤리를 저버린 채 국보와 솔퀸 법정 다툼에서 결정타를 날리는 변호사 구영모(최영준)다. 이전에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 ‘국가부도의 날’(2018)과 ‘블랙머니’(2019)에 견줘 자본과 유착한 법조 엘리트 캐릭터를 상세히 묘사해 씁쓸함을 더한다. 극 중 국보는 ‘프레시하고 부드러운’ 콘셉트의 ‘탑소주’를 출시해 사랑받는 설정이지만, 극장을 나설 때 도수 높은 ‘빨간 뚜껑’ 소주가 간절히 당길 수 있다.
두 영화의 흥행 성적을 보면 2일까지 약 47만명이 본 ‘하이파이브’가 앞선다. ‘소주전쟁’은 15만7000여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하이파이브’는 개봉 첫날부터 나흘간 하루를 제외하고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하지만 200억원 정도로 알려진 제작비 규모를 감안하면 만족할 만한 흥행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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