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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밖의 삶 열어준 ‘발달장애인의 대부’ 하늘로

입력 : 2025-06-02 22:15:00 수정 : 2025-06-02 23: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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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출신 천노엘 신부 선종

사제 서품 받은 뒤 1957년 韓 첫발
1981년 가족형시설 ‘그룹홈’ 설립
지역사회 내 장애인 자활에 온 힘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을 위해 평생 헌신한 아일랜드 출신 천노엘(패트릭 노엘 오닐) 신부가 선종했다. 향년 93세.

 

2일 천주교 광주대교구에 따르면 천 신부는 지난 1일 고향 아일랜드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인 고인은 아일랜드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56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57년 한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1958년 전남 장성성당 보좌신부로 선교활동을 시작했으나 1978년 광주 무등갱생원의 19살 지적장애 소녀의 죽음 이후 묘비에 “사회를 용서해 주시렵니까”라고 새긴 후 일생을 발달장애인을 위해 헌신했다.

45년에 걸쳐 우리나라 발달장애인을 위해 헌신한 천노엘 신부. 오른쪽 사진은 1980년대 초 천노엘 신부가 엠마우스 공동체 초창기 성탄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모습. 성골롬반외방선교회·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 제공

특히 고인은 유럽 복지현장을 공부한 후 198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지적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봉사자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형거주시설 ‘그룹홈’을 만들었다. 무등갱생원에 봉사를 다니며 알게 된 지적장애 3급 여성, 봉사자 2명과 함께 1981년 광주 남구 월산동의 한 주택을 빌려 지적장애인을 위한 최초의 그룹홈을 마련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고인은 생전 “학계나 의료계 전문가들은 저에게 지역 사회 속에, 게다가 일반 가정집에 발달장애인이 사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그것은 한국 문화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 신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천노엘 신부가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이 아닌가 하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그때만 해도 장애인을 묘사하는 용어는 끔찍했습니다. ‘-이’를 붙여 소위 정상이 아닌 이질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절름발이/ 벙어리/ 귀머거리/ 멍청이/ 바보/ 백치… 이런 단어가 스스럼없이 쓰였으며, 병신 육갑하네/ 봉사 문고리 잡기/ 봉사 잠자나 마나/ 대대 곱사등이 같은 속담이 일상적으로 쓰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고인은 이후 1985년 엠마우스 복지관, 1993년 사회복지법인 무지개공동회를 설립하고 지적장애인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지역 사회 안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자활할 수 있도록 헌신했다. 그는 2022년 7월 가톨릭뉴스에 이렇게 전한 바 있다.

 

“탈시설, 장애인 자립은 한국 문화에 맞지도 않고 지역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탈시설, 자립은 나 혼자가 아니라 광주 지역민들이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낮에는 나의 선택을 비난하는 이들 가운데 밤이면 나를 찾아와 물어봤어요. 사실은 우리 가족 중에 발달장애인이 있는데, 여기서 함께 살아도 되느냐고요.”

 

그룹홈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직업훈련, 배움을 위한 공간을 하나둘씩 만들어 간 고인은 장애인 자립에 대한 소신 때문에 교회가 장애인 관련 대형시설을 앞세워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각 교구 주교에게 “사회에서 존경받는 주교들이 꽃동네와 같은 대형 복지시설을 바람직하게 여기고 지지한다면, 일반 사회에서도 이런 형태가 옳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천 신부는 “사회적 약자가 교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늘 강조했다.

 

고인은 장애인 권익 보호와 인식 개선에 헌신한 공로로 1991년 광주시 제1호 명예시민이 됐고 2016년에는 법무부로부터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았다. 1999년 제1회 한국장애인인권상 수상을 거절했다. 이후 천 신부는 자신의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하느님의 일이라며 어떠한 상도 받기를 거절하고 공을 법인과 장애인 당사자에게 돌렸다.

 

국내에서 67년간 봉사를 실천해온 그는 지난해 7월 11일 퇴임 후 건강 등의 문제로 고향인 아일랜드로 돌아갔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이날 광주대교구청 대성당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을 받으며 3일 오전 10시∼오후 6시 추모 미사를 집전한다. 천 신부의 장례 미사는 유해 도착 일정에 맞춰 장의위원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박성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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