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리는 토니상 시상식에서 우리나라 공연 예술 역사의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세상에 첫선을 보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연극·뮤지컬 분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 주요 10개 부문 수상에 도전한다. 이 작품은 역시 10개 부문 후보작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데스 비컴즈 허’와 3강 구도를 형성 중이다. 작품상을 비롯해 음악, 각본, 연출 등 주요 부문 다수 수상 가능성이 점쳐진다. 수상에 성공하면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우리나라 첫 아카데미상 수상에 비견할 쾌거다.

K-뮤지컬이 한류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외에서 주목받는 K-뮤지컬은 ‘어쩌면 해피엔딩’만이 아니다. 세계 공연 무대의 중심인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선 집념의 한국 프로듀서가 만든 초대형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흥행몰이 중이다. K-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음달 2∼6일 열리는 K-뮤지컬 국제마켓(K-Musical Market)에는 역대 최다 참가자가 참여할 예정이다.
◆‘양반전’부터 시작된 도전
우리나라 뮤지컬 첫 해외 공연은 1987년 서울시립가무단이 88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에서 현지 동포 격려차 공연한 ‘양반전’이다. 1990년대 ‘장보고의 꿈’(1996), ‘애랑과 배비장’(1996) 등의 미국 공연 기록이 남아있는데 역시 현지 한인 대상 무대였다.
유의미한 K-뮤지컬 첫 해외 진출은 ‘명성황후’다. 1997∼1998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됐다. 브로드웨이 본고장에 오른 첫 한국 뮤지컬이란 상징성을 얻었으나 상업적 성공에는 이르지 못했다. 2010년대 K-뮤지컬 산업은 K팝 유행에 힘입어 한류 아이돌 가수를 주연으로 기용하며 아시아 공략에 나선다. 창작 뮤지컬 ‘궁’, ‘미녀는 괴로워’가 일본 등에서 일정 수준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뮤지컬 제작사들은 중국·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으로 무대를 넓혔다.

작품성과 현지화로 승부하는 전략도 시도됐다. 대학로 터줏대감 격인 ‘빨래’가 대표적이다. 2012년 일본에 라이선스 수출되어 일본어 버전으로 초연된 후 일본 관객에게 공감을 얻어 수년간 전국 공연에 성공하면서 중국 등으로 확산됐다. 대형 뮤지컬인 ‘프랑켄슈타인’도 일본에서 호평과 흥행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며 대형 창작 뮤지컬의 해외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후 K-뮤지컬은 아시아 시장에서 라이선스 수출 형태로 정착하거나, 현지 주요 제작사와 합작하는 등 한 단계 발전된 해외 진출 양상을 보였다. 중화권에서는 한류 드라마나 K팝에 익숙한 청년층을 겨냥한 로맨스 및 판타지 장르 뮤지컬이 주로 수출됐다. 다만 2017년 이후 한한령(限韓令) 등의 외교적 이슈로 중국 내 공연 교류가 위축된 상태다.

◆브로드웨이의 높은 벽
K-뮤지컬은 ‘명성황후’ 이후 수차례 뮤지컬 본고장인 브로드웨이 입성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2022년 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뮤지컬 ‘케이팝(KPOP)’이 최근 실패 사례다. K팝 아이돌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으나 개막 후 단 2주(17회 공연) 만에 극장 문을 닫아야 했다. 오프브로드웨이 시절 호평을 살리지 못한 각색과 미국 일반 관객에게 와닿지 못한 스토리 등이 원인이다. 한국적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도 탄탄한 서사와 보편성 확보, 현지 관객 취향에 대한 이해 없이 성공을 보장할 수 없음을 보여줬다.

반면 ‘어쩌면 해피엔딩’은 여러모로 한국 뮤지컬 산업이 겪은 시행착오를 극복한 모범작이다. 작품의 보편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스토리, 탄탄한 음악과 연출, 그리고 한발 앞선 해외 협업 전략이 맞아떨어져 거둔 성과다. 예술창작 지원에 지속적으로 과감한 투자를 해온 우란문화재단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2015년 시범 공연을 거쳐 2016년 말 약 300석 규모의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했다. 매진 행렬이 이어진 무대는 평단 호평과 함께 여러 상을 받으며 수차례 재공연되며 다듬어졌다. 우란문화재단은 다시 이 작품의 해외 진출을 지원해 2016년 미국 뉴욕에서 낭독회 형식의 ‘어쩌면 해피엔딩’ 쇼케이스를 열었다. 토니상을 여덟 번이나 받은 브로드웨이 제작자 제프리 리처즈가 이를 보고 박천휴 작가·윌 애런슨 작곡가와 공연 계약을 맺었다.

여러 작품을 함께 만들어온 이들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브로드웨이는 공연 제작비가 워낙 막대하다 보니, 이미 유명한 원작이나 스타를 앞세우는 공연이 대부분”이라며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 거기에 한국을 배경으로 한 이 공연의 개막 자체를 우려하는 업계의 목소리도 컸고 홍보비가 부족해 처음엔 티켓이 거의 팔리지 않은 채로 개막해야 했다”고 개막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직접 공연을 본 관객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 질주를 시작했고 “소박하지만 눈부신 보석 같은 뮤지컬” 등 평론가들 호평도 이어지며 상황은 반전됐다. 애초 2025년 봄까지 예정되었던 공연은 관객 호응에 힘입어 2025년 9월 7일까지 연장된 상태다. 또 2026년 가을부터 미국 주요 도시 순회공연에 나설 예정이다.

◆ K-뮤지컬, 산업으로서의 자립과 확장 ◆
K-뮤지컬 세계화는 현재 진행형으로 다양한 제작사들이 공략에 나서고 있다. 라이브와 HJ컬쳐는 한국 창작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선도하는 대표적 사례를 보여준다. 라이브는 ‘팬레터’를 일본과 영국(런던 쇼케이스), 중국 등에 선보였고, ‘마리 퀴리’를 폴란드와 일본, 영국에서 성공적으로 공연했다. HJ컬쳐는 ‘빈센트 반 고흐’, ‘더 픽션’, ‘라흐마니노프’ 등을 중국, 일본, 대만에 수출하며 장기 공연과 현지 수상을 이끌어냈다. 특히 ‘더 픽션’은 중국에서 5년째 공연을 이어오며 안정적인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또 ‘어린왕자’와 ‘라흐마니노프’는 대만에서 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두 제작사는 단순 공연 수출을 넘어 현지화, 지사 설립, 장기 파트너십 등 전략적 확장을 통해 K-뮤지컬의 글로벌 모델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처럼 K-뮤지컬은 단순한 콘텐츠 수출을 넘어, 한국 문화의 창의성과 기획력을 세계에 알리는 소프트파워 전략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음달 2∼6일 열리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제5회 K-뮤지컬 국제마켓(K-Musical Market)’에는 역대 최대인 3000여 명이 참여, 총 30개 작품의 해외 진출이 모색된다. 행사 관계자는 “일본 공식 초청인사 6인 외 약 40인 이상의 일본 뮤지컬 관계자가 방문하며 대만도 초청인사 1인 외 14인의 대만 뮤지컬 관계자가 참석하는 등 해외 자율 참가 인사가 대폭 증가할 것”이라며 “영국 국립극장, 일본 도쿄예술극장, 뉴욕 앰버서더극장·콩코드극장과 일본 극단 사계·도호주식회사·호리프로 등도 참여한다”고 소개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