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제 공개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공약집에는 현행 사법체계를 근본적으로 변경하거나 과거 진보 정부가 추진했다가 논란 끝에 번복됐던 정책, 경제계가 한숨을 쉬는 법안이 다수 포함됐다. 재정에 부담을 주고 나랏빚을 늘리는 선심성 공약도 제대로 된 재원 조달 방안 없이 포함됐다. 공약집대로 나라를 운영한다면 집권 기간 내내 갈등과 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법관 수 증원 공약이 대표적이다. 현행 14명인 대법관 수를 늘려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제고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설명이다. 대법관 한 명이 연간 수천 건을 처리해야 하는 실정에서 상고심이 지연되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 것은 사실이다. 증원 필요성은 있지만, 복수의 재판에 피고인으로 기소된 이 후보가 추진하니 우호적인 대법관을 대거 임명해 대법원을 우군화하려 한다는 의혹을 산다. 이 후보는 사법 개혁 시한과 관련, “지금은 모든 역량을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집권해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시간을 두고 법조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서 여야 합의로 추진해야 한다.
검찰의 힘을 빼고 민주당 주도로 창설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공약도 ‘개혁’으로 치장된 ‘검찰 손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 지적에서 자유로우려면 수사기관의 독립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권력의 칼이 검찰에서 다른 기관으로 넘어갈 뿐인 개혁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나. 검사 파면을 쉽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은 검사의 기소권 남용을 막겠다는 취지라고 하나 양날의 검이다. 정권에 부담이 될 기소 자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차제에 검찰과 법원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권력 눈치 보기나 조직 이기주의가 개입되지 않았는지 냉철히 뒤돌아봐야 한다.
‘4대강 재자연화’ 추진 공약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문재인정부의 4대강 보(洑) 해체 및 상시 개방 결정이 번복되는 과정에서 수천억 원의 세금이 낭비되고 불필요한 갈등으로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이런 낭비와 논란을 또 반복하겠다는 것인가. 쌀 과잉 생산을 부추길 ‘쌀값 정상화’나 배임 소송과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을 부를 상법 개정 공약은 표가 많은 농민이나 개미 투자자를 겨냥한 측면이 있다. 이 후보는 그동안 강조해 온 통합과 실용의 잣대에 맞게 무리한 공약들을 재고하길 바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