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등기,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잉마르 베리만/ 신견식 옮김/ 민음사/ 3만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길’, 프랭크 카프라 ‘타이틀 위의 이름’, 데이비드 린치 ‘꿈의 방’…. 영화사를 찬란하게 수놓은 거장 감독이 남긴 유명한 자서전 목록이다. 이에 비견할 위대한 감독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의 자서전 ‘환등기’가 스웨덴어판 정본 번역으로 출간됐다.
스웨덴 영화감독이자 연극연출가인 베리만은 신의 구원과 인간의 불가해한 내면세계, 타자를 통한 자기 응시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탐구한 예술가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산딸기’(1958),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제7의 봉인’(1957), 그의 뮤즈 리브 울만이 언어를 잃은 배우 ‘엘리자벳’을 연기한 ‘페르소나’(1966) 등은 시간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 걸작이다.

‘환등기’는 그의 영화 ‘마술사’(1958), ‘화니와 알렉산더’(1982) 등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주제다. 스웨덴 웁살라에서 루터교 목사 집안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매질을 일삼는 광신자 아버지와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아래서 성장했다. 어느 크리스마스에 환등기를 손에 넣은 소년은 이 장치를 통해 마술처럼 살아 움직이는 영상을 보고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빠진다. 거장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풀어놓는 약 380쪽의 이야기는 한바탕 푸닥거리처럼 소란한데,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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