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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에게서 …창의력을 뺏는 법

입력 : 2025-05-31 06:00:00 수정 : 2025-05-29 20: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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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마크 그레이엄,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 김두환 옮김/ 흐름출판/ 2만3000원

 

“기계가 우리를 닮아갈수록, 우리는 기계가 되어 간다.”

이 책의 핵심 요지다. 저자들은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해줄 것이라는 AI 신화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 노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AI 기계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그것은 우리의 노동, 우리의 창작, 우리의 시간을 삼킨다. 그것을 데이터와 통계로 바꾸어 다시 우리에게 돌려준다”며 AI는 ‘기술 혁신’이 아니라 ‘노동 착취 시스템’ 위에서 성장해왔다고 고발한다.

10년 넘게 전 세계를 돌며 수백 명의 AI 산업 관계자를 만나 AI 기술과 플랫폼 노동자에 관해 연구해온 이들은 AI를 ‘추출 기계(Extraction Machine)’라 정의한다. 추출 기계란 인간의 지식과 감정, 창의성과 노동을 흡수해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이를 다시 알고리즘으로 가공해 이윤을 창출하는 구조적 장치를 뜻한다.

마크 그레이엄, 제임스 멀둔, 캘럼 캔트/ 김두환 옮김/ 흐름출판/ 2만3000원

데이터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AI가 존재하려면 반드시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헌신이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AI 서비스는 누군가의 반복적인 클릭과 태깅, 분류 작업의 결과다. 이 데이터는 인간의 시간과 감정, 판단과 신체 활동이 고스란히 스며든 노동의 산물이다.

저자들은 AI 현장에서 일하는 ‘AI 하청노동자’의 생생한 사례로 노동자 착취 구조를 파헤친다. 책에 따르면, 케냐의 콘텐츠 검수자 머시는 메타의 하청업체에서 하루 수백 건의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게시물을 검토하는 일을 한다. 그녀는 어느 날 교통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 속에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목격한다. 고통과 충격 속에서도 그녀는 영상을 끝까지 보고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녀의 감정과 고통은 시스템 안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우간다의 데이터 주석자 애니타는 자율주행차 훈련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작업으로 분류한다. 그녀는 하루 10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 눈 깜빡임이나 신호등 같은 사소한 디테일에 태그를 붙인다. “기계가 똑똑해지려면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해요.” 그녀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그녀는 3개월의 계약직으로, 고작 하루 1.6달러 임금을 받는다.

인간의 창의력도 추출 기계의 먹이다. 아일랜드의 성우 로라는 자신의 목소리가 본인 동의 없이 AI 훈련에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목소리는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예술이자 그녀의 정체성이다. 이는 단지 기술적 복제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정체성과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된 사례다. 이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AI는 겉보기에 창의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창작물을 조합하고 통계적으로 재구성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저자들은 AI 산업이 과거 제국주의의 식민 착취 구조와 유사한 ‘디지털 식민주의’라고 경고한다. AI가 특정 소수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노동자를 통제하고 착취하는 새로운 권력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AI에 의한 새로운 노동 착취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기술 감시에 대한 시민사회의 권한 확대 △알고리즘 설계에 대한 민주적 통제 △플랫폼노동의 법적 보호 등을 제시하고 있다.

AI 산업을 이끄는 실리콘밸리의 벤처 자본가들도 성토 대상이다. 이들이 기술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지배력과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기술이 자유와 진보를 가져다준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자유는 소수 자본가의 것이며 다수 노동자와 시민은 그 밖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벤처 자본가들이 민주적 통제보다 기업의 자율성과 시장 논리를 우선한 결과 AI는 점점 더 독점화된 소수의 손에서 설계되고 통제되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시각이다.

저자들은 “기술은 누구를 위해 설계되었는가?”, “누구의 목소리가 배제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AI 기술이 일상의 모든 영역에 깊이 스며든 만큼 기술이 공정하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쓰이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AI 기술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 측면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기술 발전 과정에서 인간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를 돌아보게 하는 르포이자 보고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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