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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경부고속도로와 에너지 고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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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28 23:08:26 수정 : 2025-05-28 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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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고속도로 반대하는 사이
전 세계선 태양광과 풍력이 대세
돈이 되니 투자해 성과 내는 것
탈탄소 산업사회 진입 속도내야

‘가슴을 움켜쥐는 표정과 고통이 해소된 후 개운한 표정’이라는 표제어를 주면 누구나 떠올리는 약 광고가 있다. 광고의 남자 주인공은 배우 김하균이다. 인터넷에는 두 표정의 대비가 ‘짤’의 형태로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는 속 쓰림 약 광고이지만 다양한 상황에 응용된다.

나는 언젠가부터 숨 쉬는 게 불편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응급실로 향했다. 심장 관상동맥에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퇴원 후 느낌이 어떠냐는 아내의 물음에 나는 김하균 배우 광고의 짤로 대답했다. 심장에 고속도로가 뚫린 기분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1968년 2월1일 박정희 대통령은 삽을 들었다. 서울과 부산을 잇는 4차선 아스팔트 길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나라 살림이 빠듯하다.” “너무 비싸다.” “차도 몇 대 없는데 도로가 무슨 소용이냐.” “시기상조다.” 야당은 물론이고 자신의 각료마저 반대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는 결국 완공됐고 한국 산업화의 토대가 되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산업을 움직이는 차량의 혈관이라면 에너지 고속도로는 산업과 도시를 움직이는 전력과 수소, 재생에너지의 동맥이다. 에너지 고속도로를 둘러싼 논쟁을 들여다보면 경부고속도로 반대 논리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같다. 미래를 향한 길을 놓을 것이냐, 아니면 주저앉을 것이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5년 4월이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는 극명한 사실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발표했다. 전 세계 태양광 발전량이 처음으로 원자력 발전량을 초과했다는 것이다. 이게 믿겨지는가? 우리만 모르는 사이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이미 태양광과 풍력은 전 세계 신규 설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왜 세상이 바뀌었을까? 시작은 기후 걱정이었지만 더 큰 이유가 따로 있다. 돈이다. 돈을 벌려니 에너지는 필요한데 가장 빨리, 가장 싸게 에너지를 확보하는 방법이 태양과 바람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여기에 투자하고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는 좋지만 비싸다”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태양과 바람은 공짜이지만 문제가 있다. 바로 간헐성이다. 해는 보이다 말다 하고 바람도 불다 말다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력을 저장하는 ESS가 필수적이다. 배터리는 너무나도 비쌌다. 그런데 배터리 가격이 지수함수적으로 하락하고 설치량은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값싼 저장기술이 결합하면서 해가 져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전기는 흐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3년간 우리가 애써 눈감고 귀 닫고 지내던 동안 전 세계 에너지 현실은 변했다. 이제 변화를 담아낼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에너지 고속도로다. 태양과 바람으로 만든 에너지를 수요가 있는 곳으로 효율적으로 옮길 송전망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옛날 경부고속도로가 서울에서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사람과 물류를 실어 나르던 것처럼 새로운 에너지 고속도로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전력을 실어 날라야 한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1970년대의 반대가 오늘날의 갈등으로 되살아나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경제의 50% 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RE100, 탄소국경세, ESG 경영 압박 같은 글로벌 무대의 규칙에 직면했다. 한국 기업이 “재생에너지로 생산했다”는 인증 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기후위기 대응은 이제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우리가 더워서 죽기야 하겠냐마는 기후변화로 생기는 식량 문제는 눈앞에 뻔히 보인다. 이제 선진국이란 경제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사회를 말한다. 이제 새로운 산업 구조, 새로운 에너지 구조가 필요하다. 그 시작이 에너지 고속도로다.


경부고속도로가 20세기 산업화를 열었다면 에너지 고속도로는 21세기 탈탄소 산업사회의 문을 열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고속도로가 없다면 내일의 한국은 ‘선진국’이라는 자리에 머물 수 없다. 이제 다시 용기를 내야 할 때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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