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생긴 것 같아서” 계획범행
소년법상 최고형 징역 20년 확정
유족 측 “소년법 개정 이뤄져야”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죽이는 게 낫지”
지난해 12월25일 오후 8시50분쯤, 경남 사천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피투성이가 된 젊은 남녀가 쓰러져 있다는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119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당시 여성은 목과 복부를 흉기로 수차례 찔려 심정지 상태였고, 남성 또한 목에 베인 상처로 인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병원에 이송된 여성은 인근 고등학교 1학년생 A양으로 확인됐는데, 끝내 사망했다. A양은 당일 저녁 잠깐 볼일이 있다며 외출했다가 참변을 당했다. 가해자는 A양 옆에 쓰러져 있던 B군. 당시 17세였던 B군은 A양을 살해한 뒤 자해해 부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사천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날 A양이 B군을 만나기 위해 반갑게 뛰어가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는데, B군은 만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A양을 무참히 살해했다. 2023년 학교를 자퇴한 B군은 A양과 2020년쯤인 4년 전부터 오픈 단체 채팅방을 통해 알게 됐다. 별다른 주제가 없는 단순 채팅 목적인 해당 단체방에서 대화를 나누던 이들은 지난해 초부터 다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1 대1 대화를 이어가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확인됐다.
친구로 지내오던 와중 B군은 지난해 4월부터 A양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이상하자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의심,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죽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범행하기로 마음먹었다. B군은 지난해 4월과 9월 등에 흉기와 휘발유를 인터넷과 동네 가게에서 미리 구매하는 등 수개월간 범행을 계획했다. 그는 범행 10여일 전 A양에게 선물을 줄 게 있다며 크리스마스에 만나자고 제안하면서 주소를 물어 A양 거주지를 확인했다. 범행 당일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강원도 원주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A양 동네인 경남 사천을 찾았고, 처음 대면한 A양을 살해했다. 그는 선물을 줄 것처럼 뒤돌라고 했고, 뒤돌아선 A양에게 다가가 수차례 흉기로 찔렀다.

그는 수감 중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가 너에게 하려던 말’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3장 분량 편지에는 죄책감이나 반성보단 A양을 향한 왜곡된 이상화 등이 담겼다. “그날 그때 너를 마주 보며 웃었던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정말로 행복했어” “언젠가 다시 너와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날이 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 미안해” “누군가 내게 완벽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내가 하려던 모든 말을 네가 해주고 있었어” 등이다. “너는 미치도록 완벽한데, 완벽에 비하면 나는 최악”이라며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군은 지난 4월 창원지법 진주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기동)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공소사실과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모두 인정했다. 1심은 징역 20년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20년을 명령했다. 현행법상 특정 강력 범죄를 저지른 만 18세 미만 소년범은 최대 20년의 유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범행 당시 B군은 만 17세로, 소년법상 법정 최고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은 즉흥적 분노나 충동적 폭력과 다른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적 살인으로 그 책임이 무겁다”며 “생명과 직결되는 치명적 부위에 흉기를 여러 차례 휘두르는 등 범행 수법도 잔혹했다. 피고인의 범행으로 하나뿐인 자녀를 잃은 피해자의 부모가 감당해야 할 슬픔과 고통, 분노와 상처는 차마 헤아리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양 모친은 지난달 창원지법 진주지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봄이 왔건만 엄마는 아직 차디찬 겨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일 그리운 우리 딸을 목 놓아 불러본다”며 “딸이 떠난 지 석 달이 넘었는데 도대체 어른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목소리가 크면 관심을 가져주고 소리 없이 기다리면 한없이 방치하는 대한민국이 진정 내가 사랑하는 국가인가”라고 오열했다.
이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고 있으며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엄마의 무능함이 괴로워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렇게 호소하는 것뿐”이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최근 B군 측이 항소를 취하하며 이달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B군은 모친 설득으로 항소를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유족 측 법률사무소 빈센트는 “피고가 항소를 취하하면서 형이 확정되고 사건이 종결됐다”며 “다만 유사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년법 개정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