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가원수이자 연방정부 수반인 대통령(the President)이란 직위가 처음 한자 문화권에 소개됐을 때 중국인들은 이를 ‘대총통’(大總統)이라고 번역했다. 그래서일까, 1912년 청나라 황제의 퇴위로 중국에 공화국이 들어선 뒤 그 국가원수는 한동안 대총통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민주주의를 표방한 공화국에 걸맞지 않은 너무나 권위적인 명칭이란 생각이 들었던지 1927년 ‘대’자를 빼고 그냥 총통으로 바꾸었다. 오늘날 대만의 권력 서열 1위가 바로 총통이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에 해당한다. 대만과 달리 중국의 국가원수는 ‘국가주석(主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대륙에선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 간에 국·공 내전이 일어났다. 1949년 공산당이 대륙을 차지하면서 대만으로 쫓겨난 장제스 총통은 섬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는 정당과 단체의 설립을 금지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고 민주 인사를 탄압하는 내용이었다. “공산주의 중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들었으나, 그로 인해 대만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독재 정권’이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대만에서 계엄령이 해제된 것은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 총통 시절인 1987년이었다.
국내에서 총통 하면 바로 독재부터 떠올리는 게 꼭 대만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어쩌면 나치 지도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의 영향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히틀러는 1933년 당시만 해도 의원내각제 국가이던 독일의 총리가 되었다. 이듬해인 1934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히틀러는 새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 실시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법률을 고쳐 총리와 대통령 직위를 하나로 합쳤다. 완전한 의미의 최고 통치자가 된 것이다. 혹자는 히틀러 사례를 들어 총리의 ‘총’과 대통령의 ‘통’을 더한 개념이 곧 총통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분석은 아니지만 제법 설득력 있는 견해라고 하겠다. 독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총통의 탄생 이후 독일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총통의 시대’를 막아내겠다”고 말했다. 1971년 대선에 야당 후보로 출마한 김대중(DJ)이 “이번에 박정희 대통령이 다시 당선되면 총통제가 실시될 것”이라고 외쳤던 것이 떠오른다. 국회에 과반(151석 이상)이 훨씬 넘는 171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까지 차지하면 입법부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터무니없는 모략이라고 여길 수 있겠으나, 지난 윤석열정부 임기 내내 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불만을 느낀 국민이라면 그런 우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1세기 들어 벌써 25년이나 지났는데 총통이란 단어가 우리 정치권에 소환된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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