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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세에 패션 잡지 모델 된 홀로코스트 생존 할머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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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5-10 10:32:27 수정 : 2025-05-10 10: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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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만 살아남고 직계 가족 모두 목숨 잃어
전후 미국 이민 떠났다 2010년 독일 귀국
젊은 세대와 홀로코스트 기억·경험 공유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 꼽히는 마고 프리드랜더가 103세를 일기로 고향인 독일 베를린에서 별세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마고 프리드랜더(1921∼2025).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프리드랜더의 이름을 딴 재단은 그가 이날 숨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재단 측은 “독일은 현대사에서 제일 중요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를 잃었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마침 이날은 독일의 2차대전 종전 기념일(5월8일) 하루 뒤여서 아쉬움이 크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더 독일 대통령은 원래 이날 프리드랜더에게 독일 최고 권위의 훈장을 수여할 예정이었나 갑자기 취소됐다. 슈타인마이더 대통령은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고인은 나치 독일로부터 숱한 탄압을 받았음에도 우리나라에 ‘화해’라는 선물을 안겼다”고 추모혔다.

 

프리드랜더는 1921년 11월 베를린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의류업에 종사한 부모의 뒤를 이어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길을 밟았다. 나치 독일이 2차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 탄압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프리드랜더의 가족에게도 불행이 찾아왔다. 프리드랜더는 나치에 붙잡혀 오늘날 체코에 있는 테레지엔슈타트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나머지 가족은 처형되거나 오늘날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고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오직 프리드랜더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는데, 그는 수용소에서 만난 남성 아돌프 프리드랜더와 결혼한 직후인 1946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뉴욕에 정착한 프리드랜더 부부는 60년 넘게 해로했다. 홀로코스트 그리고 독일에서의 삶은 프리드랜더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이었다. 전후 60년 가까이 흐른 2003년에야 베를린을 다시 찾은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남편이 사망한 뒤 프리드랜더의 생각은 바뀌었다. 회고록 쓰기에 관한 수업을 듣고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작업에도 참여하며 그는 ‘나의 경험을 타인과 나눠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마고 프리드랜더가 102세이던 2024년 여름 세계적 패션 잡지 ‘보그’ 독일판의 표지 모델이 된 모습. SNS 캡처

2010년 프리드랜더는 미국 생활을 완전히 접고 독일로 영구 귀국했다. 이후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전쟁을 모르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조하며 자신의 경험을 그들과 공유했다. 102세이던 2024년 여름에는 세계적 패션 잡지 ‘보그’ 독일판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가 젊은 시절 패션 디자이너였다는 점에 착안한 기획이었다.

 

프리드랜더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나선 것은 최근 베를린 시청에서 열린 2차대전 종전 80주년 기념일 행사였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세대로서 내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는 ‘부디 인간답게 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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