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40대 초반의 무주택자 이모 씨는 요즘 아파트 실거래가 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본다. 강남 압구정 아파트가 105억 원에 거래됐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괜히 기분이 울적했다. 그는 “지금껏 기다려온 게 후회된다”며 “되는 곳만 더 오르는 시장이 돼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과 용산 등 ‘확실한 입지’를 가진 단지에서만 거래가 이뤄지고, 그마저도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다시 묶이며 거래량은 크게 줄었지만, 가격은 오히려 더 오르고 있다.
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3월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약 40일 동안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에서 거래된 아파트는 총 158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직전 40일(2월 11일~3월 23일)엔 3846건이 거래된 것과 비교하면, 거래량은 96% 가까이 급감했다.
하지만 ‘사는 곳’에만 수요가 몰리며 신고가 비율은 높아졌다. 158건 중 60건(약 38%)이 최고가 거래였고, 강남구만 따로 보면 절반에 가까운 30건이 신고가였다.
특히 압구정동은 22건 중 14건(64%)이 신고가였다. 지난달 23일엔 압구정 현대2차 전용면적 198㎡가 105억 원에 거래되며 해당 단지 최고가를 새로 썼다. 직전 거래가가 90억~94억 원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 10억 넘게 뛴 것이다.
같은 압구정 신현대11차 전용 171㎡도 이달 초 90억 2천만 원에 거래되며 한 달 새 10억 가까이 올랐고, 신현대9차 108㎡는 토허제 직전인 3월 22일 50억 원에 거래된 뒤 불과 엿새 만에 60억 원에 다시 거래됐다.
강남구 대치동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한보미도맨션2차 전용 190㎡는 60억 원, 개포우성1차 127㎡는 50억 5000만원에 거래되며 각각 신고가를 기록했다. 은마아파트 76㎡도 31억 4000만원에 팔려 다시 최고가를 경신했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역시 전용 82.6㎡가 40억 7500만원에 거래되며 처음으로 ‘40억원대’에 진입했다.
용산구에서도 리모델링 추진 중인 한강변 아파트를 중심으로 신고가가 이어졌다. 한강대우 전용 60㎡는 20억 3700만 원, 한가람 59㎡는 19억 9000만원에 거래됐다. 오랜 기간 잠잠했던 용산 시장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입지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분석한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확실한 자리’엔 결국 수요가 몰린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다고 해서 그런 단지의 호가가 낮아지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서울 내부에서도 ‘안 되는 곳은 계속 안 되고, 되는 곳만 더 오른다’는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특히 서울 외곽 재건축 단지들은 사업성이 떨어져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지역에도 실질적인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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