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다음/ 희정/ 한겨레출판 / 2만2000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다. 당사자에게 죽음은 그 자체로 끝이지만,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절차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저자는 죽음이란 주제를 밖에서 엿보는 것을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가 확인한다. 장례지도사 직업훈련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해 염습실에서 직접 고인을 맞이했다. 그 과정에서 시신 복원사, 화장 기사, 수의 제작자, 선소리꾼, 묘지 관리자, 상여꾼, 반려동물 장례지도자 등 다양한 장례업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며 장례 문화와 산업에 대해 탐구했다.
책에는 사망진단서 발급부터 빈소 마련, 입관, 발인, 운구, 매장·화장 등의 절차까지 다양한 역사와 규범, 제도, 환경 등 우리가 미처 몰랐던 죽음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상조 서비스 상품만 가입해놓고 정작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은 예비 유족과 고인을 위한 실용적인 조언도 담겼다. 삼일장의 절차와 그 과정에서 가족들이 해야 할 일들, 상조회사나 장례식장에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소개하고, ‘생전 장례식’, ‘무연고자 공영장례’, ‘장례협동조합’ 등의 대안 장례 사례도 소개한다.

장례 노동을 둘러싼 낙인과 애환, 빠르게 변화하며 상품화된 장례 산업에 대한 고찰도 풀어냈다. 1990년대 이전에는 대부분 집에서 임종을 맞이했고, 전적으로 가족과 이웃이 장례를 도맡았다. 장례의 외주화가 일상화된 현재 유족의 역할은 ‘상품 구매’에 한정되면서 장례 노동자의 역할도 ‘상품 판매’로 여겨지게 됐다. 장례 절차를 매끄럽게 진행해줄 사람을 찾기 시작하면서 결혼식 ‘웨딩 플래너’처럼 장례에는 ‘엔딩 플래너’가 등장했고, 유족은 A·B·C 패키지 중 하나를 고르는 소비자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된 사별자가 그 순간에 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생산품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애에서 소외되고 있다. 나는 내 죽음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다.”(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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