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팝, K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한류 열풍을 넘어 한류는 정치, 경제, 군사 전 영역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적 사건조차 시스템 속에서 바로잡으며 헌정 질서를 회복해가는 한국 정치 현실은 K민주주의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한국의 ‘문화적 특수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K컬처, 그것은 참혹한 전쟁과 장기간에 걸친 독재 체제를 극복하고 세계에서 유례없는 문화대국, 민주국가를 건설한 대한민국 스스로의 국가적 자부심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모든 ‘K컬처’가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K문화’라는 영광과 자부심 뒤에는 차마 수면으로 끌어올리기 부끄러운 역사적 상처와 트라우마가 공존한다. ‘K넘버’는 그러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용어이다. K넘버는 세계 최대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숫자가 25만명에 이르고 미국으로 보내진 해외 입양 불법체류자의 절반이 한국 출신이라는 역적 수치를 담고 있는 용어이다. 해외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지만 사실상 돈을 매개로 한 아동 거래였으며 국가 층위에서 이뤄진 인신매매의 다른 이름이었던 해외 입양은 2025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K넘버. 그들은 국가에 의해 삭제된 한국인들을 지칭하는 현상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우리 눈앞에 보이지 말아야 할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왔고 자신들의 뿌리를 알고 싶어 했으며 자신들의 정체성의 혼란과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향해 물었다. 우리는 누구냐고? 자신과 가족에 대한 온전한 진실을 알려 달라고.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조세영 감독의 ‘케이 넘버’는 이러한 해외 입양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1970년대에 미국에 입양된 미오카 밀러는 자신의 가족을 찾기 위해 네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지만 조작된 서류, 은폐된 진실을 둘러싼 의구심에 사로잡힌다. 미국에 입양되어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아담 크랩서는 홀트아동복지회와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소송을 제기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한다. 어렵게 친모와 만난 게일린은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라는 친모의 외면으로 오랜 상처에 더 깊은 상처를 덧댄다.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함께 그들의 친생 가족을 찾아 나선다. 이 과정에서 ‘민간기관을 통한 해외 입양 시스템’이 야기한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어간다. 카메라는 조용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국가를 향해 진실을 요구하는 해외 입양인들의 호소는 국뽕에 가까운 K컬처라는 자부심에 깊은 생채기를 낸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에 모순과 수치의 균열을 일으킨다. 영화는 입양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이제는 국가가 답해야 할 시간이라 말한다. 한국이 전 세계에 수출한 악취 나는 입양 시스템의 해악을 인정하고 국가가 이제는 자신의 시민들을 사랑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시간이라 말한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던 과거 국가의 무능을 인정하고 자신의 윤리와 책임을 다할 시간이 왔다고 주장한다. 이 땅에 태어난 자국의 아이들도 보호하지 못하면서 문화강국을 이야기하고 국가적 저출생 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기 때문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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