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과 관세협상을 조기 타결하려는 압박을 노골화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그제 “한국과의 협상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6·3 대선 전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걸 원한다고 했다. “선거전 (무역협정의 기본 틀을 마련하는) 문제를 해결한 뒤 선거운동을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도 했다. 기획재정부는 그런 의사를 전달하거나 논의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장관도 대선 전 관세협상의 결론을 내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서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4일 한·미 2+2(재무·통상)협의 후 상호관세 유예가 끝나는 7월까지 ‘패키지 합의’를 만들자는 데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 부총리는 “한국의 정치 일정과 관련 법령, 국회 협력 등 다양한 고려사항이 있음을 설명하고 미국 측 이해를 요청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미측이 딴소리를 하는 건 심리전 성격이 짙지만, 트럼프가 다급한 처지로 몰리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오락가락 관세정책 탓에 반대시위와 비판여론이 번지고 트럼프 지지율도 역대 최악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뿔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가시적인 성과를 서둘러 보여주는 게 발등의 불이다.
미 정부의 조급증은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도 감지된다. 트럼프는 인도와의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다면서 “인도가 합의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재촉했다. 베선트 장관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2차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본 정부가 (7월 참의원) 선거 전 성공적인 협상을 유권자에게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트럼프는 “협상이 오래 걸리면 그냥 관세를 정하겠다”며 고율 관세를 일방적으로 시행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미국이 상대국의 정치 일정과 경제·산업 상황에 아랑곳없이 무차별 공세에 나서는 형국이다.
미국의 속도전에 말려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는 미국 내 정세와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 등을 봐가며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산업부가 미 현지에서 양국 간 실무급 관세협의를 시작하는 데 진지한 논의로 서로 신뢰를 쌓되 주요 결정은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게 순리다. 각국의 협상 전략과 결과도 기민하게 파악해 최소한 경쟁국보다는 나은 결과를 도출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제 연대와 공조체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스스로 협상력을 갉아먹는 과도한 정치 공세는 자제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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