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30일 오전 4시30분, 그레이엄 마틴 주베트남 미국대사가 국기게양대에 걸린 성조기를 내린 뒤 급히 헬기에 올라탔다. 오전 9시, 대사관에 남아 있던 미 해병 11명이 헬기를 타고 아침 안갯속으로 사라지면서 미군의 베트남전 마지막 작전이자 ‘미국의 치욕’으로 기록된 ‘프리퀀트 윈드’가 종료됐다.
“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
곧이어 항복을 선언하는 즈엉반민 대통령의 목소리가 사이공(호찌민)에 울려퍼졌다. 오전 11시30분,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 깃발을 꽂은 탱크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독립궁의 철문을 무너뜨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20년 전쟁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베트남인 300만명, 미군 5만8000여명, 파병된 한국군 5099명이 희생된 후였다.
전쟁 종식으로 베트남은 1880년대 프랑스 식민지배 이후 약 90년 만에 독립 통일 국가의 위상을 회복했다. 그러나 오랜 전쟁에 따른 국방비 부담과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 등으로 파탄 지경에 이르자 조국을 탈출하는 보트피플은 수십만명에 달했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쇄신) 구호를 내건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성장의 시동을 걸었다. 1990년대 이후 연 5∼9%의 고도성장을 거치며 50년 전 1인당 국내총생산(GDP) 100달러 미만이었던 최빈국이 이제는 4600달러 수준의 중진국으로 발전했다. 베트남 정부는 종전·통일 50주년을 맞은 30일 호찌민에서 군·공안 병력 등 1만3000여명이 참가하는 초대형 퍼레이드를 실시하는 등 통일과 지난 수십년간의 고속 성장을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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